스포츠일반
불붙은 '김연아 키즈' 차준환, 한국 피겨 희망의 불꽃
김연아(26)가 은반을 떠난 뒤 얼어붙었던 한국 피겨스케이팅에 희망의 불꽃이 피었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뿌린 희망의 씨앗을 꽃피운 주인공은 차준환(15·휘문중)이다. 지난 8일(한국시간)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주니어 그랑프리 7차 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차준환이 연기를 마치자 박수가 쏟아졌다. 키스 앤 크라이 존에 들어선 차준환은 침착하게 점수를 기다렸다. 기술점수(TES) 70.86점과 구성점수(PCS) 72.86점을 더해 나온 점수는 143.72점. 전날 받은 쇼트프로그램 점수 76.82점을 합쳐 총점 220.54점의 고득점을 받았다. 차준환은 2위 콘래드 오르젤(캐나다·196.30점)을 24.24점 차로 크게 제치고 우승했다. 앞서 9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서 역대 ISU 공인 주니어 최고점(239.47점)으로 시즌 첫 우승을 달성한 차준환은 7차 대회까지 접수하며 2005~2006시즌 김연아 우승 이후 한 시즌 2개 대회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가 됐다. 또한 차준환은 이날 우승으로 단 6명만 나설 수 있는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출전권도 손에 넣었다.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이 2014~2015시즌 이준형(20·단국대) 이후 두 번째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자를 배출한 순간이기도 했다. ◇ 4회전 점프 장착한 무서운 막내 차준환의 등장은 '김연아 키즈 1세대' 남자 싱글 선수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 남자 싱글은 사실상 이준형(20)과 김진서(20·이상 한국체대)의 양강 구도였다. 일찌감치 김연아 이후 한국 피겨스케이팅을 이끌어 갈 선수로 지목받은 두 선수는 국내 대회 정상을 다투며 성장해 왔고,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나 4대륙 선수권대회와 같은 국제 대회도 번갈아 출전하며 경쟁했다. 국제 대회 경험은 물론이고 성적면에서도 두 선수를 따라잡을 '추격자'가 없었다. 그러나 '무서운 막내' 차준환의 등장으로 양강 구도에 변화가 일었다. 차준환의 강점은 4회전 점프다.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트리플 악셀(3회전 반) 점프가 약점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브라이언 오서(55) 코치를 만나 완성도를 높였다. 트리플 악셀 점프를 보완한 차준환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쿼드러플(4회전) 살코를 장착해 주니어 시즌 데뷔 무대에서 가능성을 입증했다. 차준환의 노력은 계속됐다. 그는 4회전 점프를 기본으로 소화하는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쿼드러플 살코 외에 또 다른 4회전 점프도 훈련하고 있다. 4회전 점프의 완성도와 성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앞으로 다가올 그랑프리 파이널과 향후 시니어 무대에서도 상위권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제 막 시작한 '평창으로 가는 길' 그랑프리 7차 대회를 마치고 9일 귀국한 차준환은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2016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회장배 랭킹 대회 준비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14~16일까지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리는 동계유니버시아드(2017년 1월 29일~2월 8일)와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2017년 2월 19일~2월 26일), 2018 평창겨울올림픽 테스트 이벤트인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피겨 선수권대회(2017년 2월 15일~19일) 파견 선수 선발전을 겸하고 있다. 차준환은 국제 대회에서 선보인 눈부신 활약 덕에 이미 우승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물론 시니어 대회인 만큼 이준형, 김진서 등 형들과 경쟁을 치러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하지만 다가올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테스트이벤트인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인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랭킹 대회를 마친 뒤에는 오는 12월 열리는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이 기다리고 있다. 3차와 7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차준환은 총 460.01점(랭킹포인트 15점)을 확보, 러시아의 알렉산데르 사마린(총 462.62점·랭킹포인트 15점)에 이어 전체 2위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올 시즌 차준환이 거둔 성적만 보면 우승 도전도 충분히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차준환을 향한 기대는 다가올 평창 올림픽을 향해 있다. 김연아가 떠난 이후 은반에서 들려오는 희소식에 목마른 국민들은 차준환에게서 '남자 김연아'의 그림자를 보고 있다. 그를 지도한 오서 코치도 "발전 속도가 놀랍다. 이 성장 속도라면 2018 평창겨울올림픽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아직 어린 소년에게는 이런 기대가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평창 올림픽 관련 질문을 받은 차준환도 "아직 나에게는 먼 얘기라고 생각한다. 올해 중요한 대회는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이다. 이 대회에 집중하고 싶다"며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그렇다고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2018 평창겨울올림픽에 출전한다면 지금까지 준비했던 모든 것을 발휘해 깨끗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차준환의 '평창으로 가는 길'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김희선 기자
2016.10.13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