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땅에 온 지 벌써 3개월째에 접어들었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이곳의 생활은 나름대로 안전하고. 편하고. 재미도 있다. 이 세 단어(안전. 편안함. 재미)는 ‘아프리카’를 떠올렸을 때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말이다.
우리에게 유럽이 온갖 좋은 이미지들로 꾸며져 있다면 그 바로 밑에 있는 아프리카 대륙은 그와는 정반대로 못살고 매력 없는 땅으로 인식되어 있다. 내가 잠깐 경험한 이 곳의 삶은 그리 나쁘지 않은데 말이다.
먼저.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가나 사람은 외국인에게 무척 호의적인 편이다. 특히 내가 여성이라 그런지 어딜 가나 현지 남성들의 관심이 쏟아진다. “오브로니! 하우 아 유?(Oburony! How are you?)”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한 번씩 던지는 표현이다.
참고로 오브로니는 백인이란 뜻의 현지어이고 이들은 자기네처럼 까맣지 않으면 무조건 백인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적극적인 현지인은 내 손을 꼬옥 잡고 일 분만 대화를 하자고 하거나 친구가 되고 싶다면서 연락처를 달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애써 못 알아듣는 척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꿈에서나 가능했을 일들이 가나에서는 현실이다. 이왕이면 윌 스미스 같은 아저씨가 접근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근데 한 가지 알아둘 것이 있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그 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아프리카 사람들은 번듯한 집이나 차가 없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처럼 그들은 오브로니는 무조건 돈이 넘치도록 많아 고급호텔에서만 투숙하고 택시만 타고 다니는 것으로 생각한다.
오브로니와 친구가 되면 초청장과 함께 비행기표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우리나라는 땅값이 비싸서 너희처럼 마당 있는 궁궐 같은 집에서 살 수가 없다고 하면 이해를 못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아프리카에 BMW. 벤츠가 깔렸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기 어려워 할 것이다. 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곳에서 나의 교통수단은 ‘트로트로’이다. 중고 봉고차의 털털거리는 소리에서 이름 붙여졌다는 트로트로의 문짝에서 가끔 반가운 한글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동문’이다. ‘00대리운전’ 이라는 스티커가 붙여진 택시도 종종 눈에 띈다. 이들에겐 한글이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로 수입차의 징표겠지만 보는 나에겐 더없이 반갑고 즐겁다.
우리의 한글은 차 외에도 많은 중고품에서 볼 수 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가방을 보면 3분의 1은 한국에서 온 가방이다. 브랜드 가방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은 학생이름이 매직으로 적혀있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가방이다.
중학생인 ‘임마’(임마누엘의 애칭)는 며칠 전 ‘노인회’에서 받은 모자를 쓰고 왔고. 6학년 ‘애니스트’는 수원 칠보의 김달중 유니폼을 입고 와서 나를 경악시켰다. 이곳에서는 한국을 기억나게 하는 것들이 많은데 한국에 가게 되면 과연 어떤 것들이 아프리카를 떠올리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