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제정된 성매매특별법은 도입단계부터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법이다. 시행 4년이 지난 지금 정부의 의도대로 한국 사회의 밤 풍속도가 건전해졌을까?
성 구매자에 대한 처벌 강화로 집창촌이 하나 둘 사라지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한층 더 심각한 양상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퇴폐 마사지나 인터넷 성 매매가 주택가와 안방까지 파고들어 심지어 초등생들 까지 음습한 성문화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또한 동남아와 중국 등지로 섹스관광에 떼지어 나서는 한국인들의 엑소더스 행렬은 세계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지 오래다. 늘어만 가는 해외원정 골프 관광객의 상당수가 낮 그린보다 밤 그린에 더 관심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집창촌 단속으로 인한 풍선효과로 성병이나 에이즈 관리에도 적신호가 켜져 국민건강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종업원들이 인터넷 채팅 등을 통해 무작위로 몸을 파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대딸방 등에서 행해지는 구강이나 항문 신체의 일부를 이용한 유사성교행위도 판을 치고 있다. 거기에 스폰서카페·여성 전용 증기탕·준빠 등 밤 문화의 기형적 자기복제는 이미 통제할 수 있는 선을 훌쩍 넘어섰다. 이쯤되면 성매매특별법의 제정 의도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성매매는 인류사의 태동과 함께 시작 되어왔다. 성매매를 사회적 강자인 남성이 약자인 여성을 착취한다는 시각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성매매의 사회경제학으로 보면 구매자인 남성 대부분도 도덕적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의 약자계층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성매매가 왜 처벌대상이 되느냐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성매매 종사자들 상당수가 자발적 의사에 의해 성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논리지만 자본가들을 위해 공장이나 기업에서 뼈 빠지게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것과 성을 파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 시간 당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성매매가 경제원리로만 따지면 훨씬 효율적인 밥벌이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통용되는 사회는 이미 갈데 까지 간 사회이겠지만 다행히도 한국사회에선 아직 소수의 주장에 불과하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듬해 제주도 관광산업이 휘청 한 일이 있었다. 일본인 관광객의 급격한 감소 때문이다. 이처럼 성문제는 하나의 잣대로만 파악하기 힘든 복잡다단한 것이다.
캐나다나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살다 온 한국 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심심해서 못살겠다고. 그리고 돈만 있으면 한국이 천국이라고.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자연스러울 정도로 한국의 밤 문화는 퇴폐적이고 향락적이다.
성매매특별법의 명암이 말해주듯 성 문제는 국가에서 통제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도덕적으로 누구를 비난하고 말고 할 성격의 문제도 아니다. 철저하게 개개인의 이성에 맡겨야 할 문제다. 결국 좋은 사람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자본주의 경쟁논리만이 최상의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요원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