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가까운 인터뷰 내내 그는 “인생 1라운드는 펄펄 날았지만 2라운드는 '조졌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그만큼 지나간 세월에 대한 후회가 진한 듯 싶었다. 그러나 그는 또 "3라운드를 지켜봐 달라"는 얘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인생 3라운드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새 인생을 살겠다는 얘기였다.
박종팔(51). 아니 지금 그의 이름은 '박종성'이다. 명함에는 '박종성'이라는 이름 오른쪽에 괄호를 열어 '(팔)'자를 써넣었다. 2라운드를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보내 KO패 당했다고 생각한 그가 점집을 갔더니 '팔'자를 빼라고 했단다. 그는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며 "사업을 하는 데는 '박종성'이라는 이름이 낫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은퇴 후 하는 일마다 실패1989년 은퇴 후 그가 가장 크게 벌인 일이 1994년 동아프로모션을 인수한 것. 권투만 하던 그가 다른 사업이 생각날 리 없었다. 그러나 인생을 건 이 일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 당시 권투협회 내의 알력과 소용돌이에 얽혀 외국 선수들을 들여오고도 경기를 치르지 못해 엄청난 손해를 봤다.
그는 이 일에 격분해 국회까지 쳐들어가 모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난동을 부리다 '큰집' 신세까지 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시 서울구치소에서 딱 37일 살고 나왔지요. 엄청나게 손해를 봤지만 이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그동안 체중 빼느라 고생했으니까 휴가 줬다는 생각 말이죠. 그만큼 철이 없었나 봐요."
▲'세상이 내 맘 같지 않더라' 권투 프로모션 일이 풍비박산 난 뒤 벌인 게 유흥주점이었다. 서울 강남구 '목화예식장' 뒤편과 역삼동에 '챔프'라는 단란주점을 차렸다. 그러나 겉으로 번지르르하고 안으로는 멍드는 일이 계속됐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나는 줄 것은 주는데 받을 것은 이상하게 못 받더라"는 것이었다. 돈은 나가기만 하고 들어오지 않으면서 이마저 오래 버틸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두 손을 들고 포기하고 말았다.
은퇴 당시 그는 당시 가치로 수십억 원대의 자산가였다. 한창 잘 나갈 때인 84년 IBF 4차 방어전 때는 대전료로 15만달러를 받았다. 당시 환율로도 1억 원이 훌쩍 넘는 큰 돈이었다. IBF 8차 방어, 동양타이틀만 19차 방어까지 했으니 대전료만 모았어도 거금이었다. 국세청으로부터 '투기 세력'으로 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채 10년이 안 돼 모든 걸 잃었다. "당시 마음을 둘 곳이 없어 산을 많이 다녔다. 혼자서였죠. 몹쓸 생각도 했었지만 이렇게 내 인생을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으켜 세워준 두번째 반려자 '챔프'를 그만두고 난 후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급기야 2년 전에는 평생을 함께 한 아내까지 잃었다. 운동으로 성공하기 전 결혼해 가정을 버텨준 기둥이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두 딸의 아픔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런 그에게 지인의 소개로 만난 한 여성이 힘을 줬다. 맨 주먹으로 시작한 그에게 한번 더 맨주먹으로 해보자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인해 피해 본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끝내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시작하면 뭘 못 할까 하는 자신감이 들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복싱으로 빛난 이름, 복싱에 힘이 되겠다그는 지난 5월 회사 2곳에 이름을 올렸다. (주)종우MPS의 대표이사, (주)솔안의 부회장이다. 업종은 '건축물 종합관리'. 청소 용역회사다. 아직 경기가 좋지 않고 회사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초전이지만 가을부터는 본격적으로 실적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선배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도 곁에 있고. 아직 잃었던 웃음을 완전히 되찾지는 못했지만, 3라운드를 멋지게 장식해 보이고 싶다. 그리고 나면 권투를 살리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내가 권투를 해서 유명해졌는데 그 신세는 갚아야 하지 않겠나."
'미들급의 강자' 박종팔은 이제 막 인생 3라운드를 위해 링에 올라 몸을 풀고 있는 중이다.
박종팔 프로필출생: 1958년 8월 11일 전남 무안
학력: 무안북국민학교-무안북중-천호상전
체격: 178cm 88kg
가족: 2녀
경력: 통산전적 46승(39KO) 5패 1무
1987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1984년 IBF 슈퍼미들급 챔피언
1983년 OPBF 미들급 챔피언
1978년 KBC 미들급 챔피언
취미: 등산·낚시, 술은 입에도 못 댐.
박수성 기자 [mercu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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