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양용은 PGA 역사 다시쓰다②] 호랑이 사냥꾼 등장
"건방진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내가 구두닦이를 하면서 전국에서 9등을 한다 해도 이보다 많이 벌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골프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투어 프로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용은(37)이 프로로 데뷔한 첫해인 1997년 KPGA투어는 한해에 11개 대회가 열렸고, 1998년과 1999년에는 IMF 구제금융의 경제 여파로 각각 7개 대회 뿐이었다. 프로데뷔 3년차인 1999년 신인왕을 차지했지만 1년 수입의 총상금은 1800만원(상금 랭킹 9위)이었다.
양용은은 "당시 그 돈에서 세금까지 떼고나면 대회 출전 경비는 고사하고 처자식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투어 프로 생활을 접을까도 고민했다. 골프레슨을 하면 생활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그는 "더 큰 무대로 나가기 위해 실력을 쌓으려면 절대 레슨을 해서는 안된다"고 다짐했다. 큰 꿈과 목표 때문에 살림살이는 더 궁핍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5년이 다 돼가도 아내와 한 약속을 지킬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그 이듬해 KPGA투어를 뛰는 틈틈이 일본프로골프(JGTO) 투어의 문을 두드렸지만 만만치 않았다. 2002년 봄, 그는 아내 박영주씨에게 "앞으로 5년만 더 기다려주면 진짜 호강시켜주겠다"고 두 번째 약속을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양용은은 그해 11월 SBS프로골프최강전에서 연장전 끝에 생애 첫 승을 차지했다. 우승상금은 2700만원이었다. 그리고 2003년에는 JGTO 퀄리파잉 스쿨에 수석 합격하는 행운을 잡았다. 2004년부터는 국내 투어를 아예 접고 일본 투어에 전념해 2승을 거뒀고, 2005년과 2006년에도 각각 1승씩을 거두면서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았다.
특히 2005년 9월 셋째 아들 경민(5)이가 태어나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현우(11)와 이수(10) 등 세 아들을 두고 있는 양용은은 셋째 아들의 출산을 지켜본 뒤 일주일 만에 JGTO투어 코카콜라도카이클래식에서 우승(약 2억4000만원)했고, 1년 뒤 아들 돌잔치 때문에 일시 귀국해 출전했던 2006년 9월 한국오픈(우승상금 2억원)도 1위에 올랐다. 이 대회 우승 덕분에 11월 유러피언투어 HSBC챔피언스에 초청돼 우승상금 7억8745만원을 벌었다.
HSBC챔피언스 우승은 대형사고였다. 타이거 우즈가 출전한 이 대회에서 양용은은 덜컥 우승을 해버린 것이다. 2라운드까지는 공동 8위로 우즈(공동 3위)에 뒤졌으나 3라운드에서 2위로 치솟은 뒤 최종 4라운드에서 3타를 줄이며 합계 14언더파로 우즈를 2타차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우즈의 7연승을 저지한 장본인이 바로 양용은이었다. '타이거를 잡은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이때 얻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방에서 고생하던 아내를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난다"고 말했다.
최창호기자 [ch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