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가난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 모습은 없었을 겁니다.”
찢어지는 가난은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회를 줬다. 올 시즌 서울 SK의 유니폼을 입은 새내기 변기훈(21·187cm)에게 농구는 살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 번 해보자’며 마련했던 문방구가 쫄딱 망했다. 빚더미에 올랐고 누나를 비롯한 네 가족은 이사를 가야만 했다. 그동안 살던 해운대를 떠나야 했고 학교도 옮겼다. 새로 전학 간 부산 성동초등학교. 아이러니하게도 밀려 온 이곳에서 인생 일대의 기회를 얻었다. 키가 크고 운동신경이 좋은 그를 눈 여겨 본 농구부 형들이 고사리 같은 손에 공을 쥐어줬다. 그때만 해도 학년에서 키가 가장 컸던 그는 이내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가난은 늘 그의 발목을 잡았다. 농구부 회비는커녕 급식비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한창때라 뛰면 뛸수록 허기가 졌다. 일부 학부모들은 ‘회비도 내지 못하는 아이가 경기를 뛰는 데 우리 아이는 왜 안 뛰게 하느냐’며 지도자에게 거센 항의를 하기도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그는 늘 힘이 없었다. 중학교 때는 “그 힘으로는 농구 못한다. 여중으로 가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럴수록 그는 독기를 품었다. “프로 선수가 됐으니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어요. 아마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농구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동아고에서 이상국 코치를 만나면서다. 이 코치는 훗날 그의 무기가 될 슛과 드라이브인을 가르쳐줬다. 건국대 황준삼 감독이 그를 유심히 본 것도 이때부터다. 황 감독은 그를 수시로 건국대로 불러들여 먹을 것을 사주고, 농구화와 옷가지를 챙겨줬다. 그리고 그에게 약속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프로에 가게 해줄테니 믿고 따라와라.” 건국대 재학시절 황 감독은 유독 변기훈에게 혹독했다. 조그만 실수에도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뒤로는 그가 봉사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기가 죽지 않도록 도왔다. 결국 그의 말대로 변기훈은 3학년을 마치고 신청서를 낸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위로(1라운드 4순위) SK 나이츠에 지명됐다. 드래프트장에서 그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부모님은 펑펑 울었다고 한다. 변기훈은 “이제 내가 가정을 이끌 수 있겠구나”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프로 데뷔 후에는 동아고 선배 주희정이 그를 챙긴다. 자신도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던 주희정은 “어려운 사람이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기훈이는 기량이 뛰어난 선수다. 이런 선수가 성장해야 KBL이 산다”며 후배를 감쌌다. 고등학교 선배의 따뜻한 배려 덕분이었을까. 변기훈은 1일 울산 모비스와 경기에서 3점슛 3개 포함 15점을 림에 꽂았다. 프로 데뷔 후 최고 성적이다. 이제는 당당히 신인왕 후보로 이름을 내민다. 그에게 신인왕 욕심을 물었다.
“공식 인터뷰에선 욕심 없다고 했는데 솔직히 왜 없겠어요. 아직도 빚이 많아요. 더 성공해야 되요. 신인왕 타서 보너스 받으면 평생 고생하신 부모님 비행기 태워드리는 게 꿈입니다.”
이정찬 기자 [jayc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