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사주팔자는 진짜 맞는 것일까. 주역의 64괘에는 철학이 있다. 제일 좋은 괘가 나와도 나중에 나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잊지 않고, 제일 나쁜 괘가 나와도 훗날 좋아질 테니 희망을 놓지 말라는 말이 나온다. 좋든 나쁘든 사주는 변하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사주를 피하지 못해 돌아가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위한 구명시식을 청했다. 아버지는 과거 대연각호텔에서 바람을 피우다 어머니께 들켜 끌려나왔는데 그 직후 호텔에서 화재가 나 무려 165명이 사망했다. 이후 아버지가 어머니께 고마워하여 한동안 여자를 안 만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년 후 대왕코너 화재사건으로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다. 첫 번째 기적은 있어도 두 번째 기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화재로 돌아가실 팔자였나 봅니다."
부친은 평소 자신은 대연각호텔 화재사건때도 죽지 않은 사람이니 앞으로도 죽을 일이 없을 거라며 호언장담하셨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가 대왕코너 화재사건으로 돌아가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당신 아버지는 화재로 돌아가실 사주가 아니었습니다." 구명시식을 해보니 그는 화재로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조심해야할 것은 화재가 아니라 바로 여자였다. 애초에 여자를 만나 바람을 피우지만 않았더라도 대연각호텔에 갈 일도, 대왕코너에 갈 일도 없었다.
그러나 인생의 낙이 여자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늘 바람을 피웠다. 하늘은 이미 대연각호텔 사건으로 미래의 죽음을 경고해줬건만 아버지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 여자를 만나다 그만 큰 화를 당하고 말았다. 대연각 호텔 사건 이후로 조심만 했어도 평온하게 살다 돌아가실 팔자였다.
사람이 자신의 업장을 끊는다는 것은 참 어렵다.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은 손가락을 끊고도 도박을 한다. 마약을 끊었다는 사람도 언젠가는 반드시 마약을 하게 되어 있다. 인간은 '내가 왜 이러지' 자책하면서도 항상 자신이 지은 업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특히 많은 남자가 여자 때문에 큰 실수를 한다. 여자를 끊는다는 것은 참 어렵다. 김유신 장군처럼 천관녀 집 앞에 멈춰선 애마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장을 무섭게 끊는 사람은 크게 성공하거나 큰 화를 면할 수 있다.
"사주란 장점보다 단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약 여자를 조심하라는 경고만 귀담아 들었어도 아버지는 화재로 돌아가시지 않았을 겁니다." 아들은 아버지 인생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더 큰 행복을 좇다 제 명을 다하지 못했다. 사람 팔자에 두 번씩 죽어야할 사람은 없다. 천운으로 죽을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면 하루빨리 자신의 단점을 고쳐야 한다. 하늘은 절대 두 번 구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반드시 불행한 삶이라고 볼 수 없다. 몇 년 연장시킨 수명과 그 사이 잠깐이나마 느꼈던 그 심정은 그분의 영혼을 약간이나마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차이는 간단하다고 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은 깨달은 사람이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만 보고 불행으로 여기는 사람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인생의 행·불행은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