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팀당 보유등록선수는 63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또한, 1군 로스터는 26명(경기 출장은 25명)이다. 9월 1일 이후 5명이 추가되어 31명(경기 출장은 30명)이 벤치에 들어갈 수 있다. 신고 선수라는 길이 있다고 해도 드래프트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도 더 좁은 문이 기다리고 있는 게 프로야구의 세계다. 유니폼을 입고 1군 무대에서 뛰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량을 갖춰야 하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프로의 세계는 다재다능한 선수들이 각축을 펼치는 경쟁의 정글이다. 그렇다고 해도 다재다능함만이 1군 무대의 키워드는 되지 않는다. 어느 팀도 류현진이나 이대호와 같은 선수만으로 1군 로스터를 구성할 수 없다. 어느 리그나 특급 선수의 수는 아주 적으며 1군 주전선수에 해당하는 이른바 일류선수도 그렇게 많지가 않다. 결국, 프로야구 선수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이류선수며 일부는 벤치 멤버로 1군 무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본프로야구의 명장인 노무라 가쓰야 전 라쿠텐 감독은 “이류선수도 보통과 특급으로 구분된다”며 “특급 이류선수는 주전이 되기에는 부족하지만 1군에 통용될 무기를 가진 선수”라고 밝혔다. LG 서동욱처럼 내·외야 어느 포지션이든 가능하며 빠른 발에 장타력까지 갖춘 양손 타자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선수는 특급 선수보다 더 드물다. 투수라면 좌타자에 강한 좌타자 스페셜리스트이며 타자는 다양한 포지션을 맡을 수 있거나 좌투수에 강한 우타자나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 대표적인 선수가 수위경쟁을 펼치는 LG의 윤진호다.
오지환, 박경수 등의 부상으로 1군 출장 기회를 잡은 윤진호는 42경기에 출장해서 타율 1할5푼3리를 기록하고 있다. 타점은 단 1개이며 장타율도 2할3리에 불과하다. 타격 성적만 본다면 ‘뭐 이런 선수가 1군에서 뛰느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런 윤진호에게도 이수근의 가짜 중국어와 같은 강력한 무기가 있다. 바로 수비다.
“내야 전 포지션을 맡을 수 있으며 아주 강한 어깨에 정확한 송구와 유연성 등 수비수에게 필요한 능력을 두루 갖춘 선수다.” 어느 야구인이든 인정하는 윤진호에 대한 평가다. 게다가, 광주일고 시절 그를 지도한 허세환 인하대 감독은 “타격 능력은 없지만 작전 수행 능력은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윤진호가 LG에 신고 선수로 입단할 수 있었던 것도 수비 덕분이었다. 2009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그는 SK와 삼성에서 테스트를 받았지만 결과는 불합격. 실망스러운 결과에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LG의 문을 두들겼다. 일주일간의 테스트를 거쳐 신고 선수이지만 합격 통지를 받았다. LG 관계자는 “스카우트 팀이 평가한 것처럼 타격도 주루도 평균 이하였지만 수비가 아주 뛰어났다. 한 가지 장점이 있는 선수는 팀에 보탬이 될 것으로 봤고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박종훈 감독이 LG 지휘봉을 잡고 나서 바뀐 점은 외부 영입보다는 내부 발탁에 있다. 과거 LG는 노장들의 휴식처였다.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서 노장 선수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느 구단에도 뒤지지 않는 구리 2군 구장은 한숨만이 넘쳐났다. 그러나 박종훈 감독이 부임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FA를 영입하기보다는 트레이드를 통해 부족함을 메우고 2군 선수들에게 기회를 줌 내부 성장을 도모했다. 올 시즌만 해도 오지환, 이택근, 박경수, 이대형 등의 공백을 정의윤, 윤진호, 서동욱, 양영동 등으로 잘 메우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어느 팀 코치는 “올해 LG가 부상자가 속출하면서도 수위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것은 윤상병, 윤진호 등 특급 이류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특급 이류선수는 팀에 보탬이 될 뿐만이 아니라 선수 개인에게도 득이 된다. 프로야구에서 어정쩡한 주전선수의 생명은 그렇게 길지 않다. 반면, 좌타자 스페셜리스트로 오랫동안 활약한 류택현에서 알 수 있듯이 특급 이류선수의 생명은 길다. 또한, 특급 이류선수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수·주 중에 자신의 장점 한두 가지를 살려서 부단히 노력한다면 일류선수가 부럽지 않은 특급 이류선수가 될 수 있다.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선수의 기량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피라미드의 정점, 즉 특출한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 적은 자리를 놓고 다툰다. 아마야구에서는 천재라고 불렸지만 프로야구에서는 주목 한번 받지 못하고 사라진 이가 무수히 많다. 자신의 기량이 프로라는 벽에 부딪혔을 때 좌절감에 몸서리치며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기 변혁한다면 특급 이류선수라는 또 다른 길이 열릴 것이다. 이것은 야구만이 아니라 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야구라> 손윤 (http://yagoo.tistory.com/)
* 위 기사는 프로야구 매니저에서 제공한 것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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