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도 무렵이다. 잠실 후암정사로 산부인과 의사 C씨가 찾아왔다. 그는 서울의 유명 산부인과 개원의였다. 10년 넘게 병원을 운영하다보니 경제적 부는 물론이고 명성까지 얻어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 바로 부인과의 결혼 생활이었다. 미모가 뛰어난 부인은 두 얼굴의 여인이었다. "저는 두 여자와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는 현모양처처럼 저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더니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제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합니다."
남들은 다들 부인을 잘 얻었다며 칭찬이 자자했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최고의 신붓감인 C씨의 아내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남편에게 끔찍하게 잘했다. 하지만 남편과 둘만 남게 되면 욕을 하며 폭력을 휘둘렀다. 그는 그동안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더니 지갑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제 아내입니다. 정말 미인이죠?" 나는 C씨 아내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진 속 아내에겐 셀 수 없이 많은 태아령들이 빼곡하게 빙의되어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태아령들은 C씨의 부인을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자신을 죽게 만든 의사를 향한 저주였다. "그동안 중절수술을 많이 하셨군요?" 내 말에 C씨는 굳게 입을 닫고 말았다.
중절수술은 엄연히 법적으로 금지됐지만 병원에서는 암암리에 수술을 하곤 했다. 특히 70년대~80년대에는 산아제한정책으로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지만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중절수술을 선택하는 부모들이 많았다. 불교에서는 중절수술로 죽은 태아령을 수자영가라 하여 제 수명을 다 채운 영가들보다 더 정성을 다해 천도한다.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인공 유산되거나 강제로 낙태됐기에 그 원한이 더 깊고 슬프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 경제가 있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중절수술을 겪어야 했다. 경제발전기에 산아제한정책은 필요악이었다. 경제가 어려우니 사람 수를 줄여보겠다는 단순한 국책사업 때문에 수많은 중절수술들이 시행됐으며 그 결과 태아령들의 집단빙의로 게임중독·우울증·집단자살 등 심각한 정신적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C씨의 구명시식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종종 수자영가를 위한 구명시식을 했었지만 그렇게 많은 태아령들이 한꺼번에 나타난 적은 처음이었다. 태아령들은 C씨 부부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어머니의 따뜻한 뱃속에서 난데없이 죽임을 당한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정성을 다해 태아령을 천도했다. 정말 끝도 없이 많았다. 10여년 넘게 중절수술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 의사가 죽인 태아령이 이렇게 많은데 대한민국 전체에서 목숨을 잃는 태아들은 얼마나 많겠는가. 태아령은 대한민국의 천업이다. 경제발전의 이면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태아들이 있었음을 잊어선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