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이 2005년 2월 23일 대구하계U대회 광고물 사업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대구지검에 소환되고 있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25일 대구구치소에 구속·수감됐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나는 대구를 위해 발벗고 뛰었다. 95년부터 연임한 문희갑 시장은 나와 경북고 동기로서 든든한 동반자였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문 시장의 핵심 사업은 99년 시작한 '밀라노 프로젝트'와 2003년 8월 10일 열리는 대구하계U대회였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대구를 세계적인 섬유·디자인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대구하계U대회(이하 U대회)는 부산아시안게임(2001)과 한·일월드컵(2002)에 자극을 받아 유치한 유일한 국제행사였다.
이런 국제행사가 출범할 때 시(市)가 주도권을 갖는 국제대회 체육진흥법이 마련된다. 엄청난 광고사업권이 따라붙기에 대구시가 사업자를 선정하고 사업자가 제공하는 기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U대회를 앞두고 진흥법 적용 기간이 짧은 편이었지만 대구시로선 당장에 300억원 확보가 가능했다.
문 시장은 U대회 유치 및 진행을 위해 체육진흥법이 발효되도록 나를 재촉했다. U대회를 앞두고 잇따라 악재가 터졌다. 2002년 10월 문 시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공천도 받지 못한 채 3선에 실패했다. U대회는 전적으로 문 시장의 작품이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문 시장은 3선을 위해 연임 끝무렵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이 사건으로 문 시장이 낙마하면서 한나라당은 유력한 공천자를 잃었고, U대회는 데미지를 입었다.
급조된 조해녕 신임 시장 체제는 2003년 8월 10일의 U대회를 앞둔 그해 2월 19일,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을 겪었다. 이 사건으로 200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 시정의 모든 업무는 사망자 및 실종자 유족·부상자 가족 대표들의 시위로 인해 마비됐다. 전국의 성금과 대구시의 보상금으로 가족들에게 1인당 1억~6억원이 돌아가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우여곡절 끝에 U대회를 마무리했다. 그 해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 1차 투표에서 탈락했다. 새 진흥법을 가질 수 있는 평창이 기회를 잃으면서 대구시는 U대회 체육진흥법 연장법안을 추진하도록 날 독려했다. 4년 연장하면 약 1000억원의 기금이 들어온다.
나는 문광위원회 상임위원으로 U대회 연장법안을 상정했다. 열린우리당 간사가 연장법안에 반대하고 있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우리당의 소위원회 간사를 찾아가 "대구 좀 살려줘"라고 익살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는 한나라당 소속이지만 상대당 의원들과 개인적 친분이 두터웠다. 그러자 주위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강 의원 좀 도와주라고"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곧바로 열린우리당 간사 쪽에서 조정안이 들어왔다. 4년 기한을 2년 기한으로 조정하고, 여·야로 구성된 문광위 법안 소위원회와 문광위를 통과시키고, 법사위에서 법안 제안 설명을 해 통과시켰다. 그 결과 506억원의 기금이 떨어졌다. 기존의 300억원을 합쳐 모두 806억원의 기금을 따낸 것이다. 나는 2004년 8월 9일 그 공로로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그해 의원 임기가 끝났다.
2005년 2월 19일 대구지검에서 "21일 출두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당시 옥외광고업자인 전홍의 박정하 회장이 부산아시안게임과 한·일월드컵·U대회의 광고사업권을 위해 60억원의 로비 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나는 박 회장에게 1억 7800만원의 정치 후원금을 받고 영수증을 내주었다. 검찰은 이를 대가성으로 보았다. 21·23일 조사를 받고, 25일 대구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난 이의를 달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법을 어기면 누구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