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북한 축구대표팀 선수단이 일제히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선수들은 동료 등에 올라타며 환호성을 질렀다. 선수와 코칭스태프는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듯 얼싸안고 기뻐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5만 여명의 북한 응원단도 인공기를 흔들며 기뻐했다.
북한이 15일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C조 5차전에서 일본을 1-0으로 꺾었다. 박남철(26·4.25체육단)이 후반 5분 박광룡(19·바젤)의 패스를 받아 헤딩 결승골로 연결했다.
경기는 최종예선 진출 여부가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시작됐다. 일본은 최종진출을 일찌감치 확정했고, 북한은 이겨도 희망이 없었다. 그러나 물러날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 앙숙 관계라 승리가 절실했다. 또 1989년 이후 22년 만에 평양에서 열리는 양 국가간 경기라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경기 시작 전에는 북한 관중들이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일본 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야유를 퍼부었다. 경기 도중에는 관중석 한쪽 면을 이용해 '조선 이겨라'라는 노란 글씨의 대형 카드섹션을 만들었다.
북한 선수들은 거친 파울로 일본의 기를 죽였다. 그 결과 90분 동안 옐로카드가 8장이나 나왔다. 정일관은 후반 32분 거친 태클로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아 퇴장을 당했다. 후반 13분에는 박남철과 마에다 료이치(30·주빌로 이와타)가 총돌하며 난투극 직전까지 갔다. 동료들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주먹다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일본은 북한의 공격적인 모습에 쩔쩔맸다. 수차례 골키퍼 일대일 찬스를 내주며 무너졌다. 수비진도 당황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샬케04의 수비수 우치다 아츠토(23)는 공을 상대 진영으로 걷어내려다 머리 위로 띄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했다. 경기가 패배로 끝나자 일본 선수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본은 이날 패배로 A매치 연속 무패 기록이 20경기에서 멈췄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일본 감독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힘에 밀렸다. 북한은 대단한 각오를 한 듯 덤벼들었다. 모든 상황이 일본의 편이 아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