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1952년. 그해 부친과 나는 큰 사고를 당했다. 당시 무주경찰서장으로 재임 중이던 아버지는 수류탄 오발사고로 손을 다치셨다. 하마터면 목숨까지 위험했다. 그해 나도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의 지프차를 타고 가던 중 차가 뒤집어져 라디에이터의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목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아버지와 나는 번갈아가며 병원신세를 졌다. 둘 다 중상이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낫진 않았다. 치료기간도 지루하고 힘들었다. 지금까지도 내 목엔 그때의 화상자국이 남아있다. 상처를 볼 때마다 1952년 힘들었던 임진년이 떠오른다. 아마도 우리 부자와 용띠 해는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용은 굉장히 멋지고 센 동물이지만 아무도 본 사람은 없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환상 속 동물이다. 십이간지 중 유일하게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무턱대고 용을 꿈꾼다. 서양이고 동양이고 마찬가지다. 멋진 신화, 설화에는 꼭 용이 등장한다.
간단히 말해서 용은 귀신과 같은 존재다. 귀신처럼 믿거나 말거나한 동물이란 얘기다. 신기하게도 용을 본 사람은 없지만 용의 생김새는 일치한다. 얼굴은 공룡과 같고 긴 꼬리를 갖고 있으며 날개도 있다. 입에는 여의주를 품고 있고 구름 속으로 승천한다.
동물 중 가장 신비롭고 강한 동물이니만큼 용의 해는 파란만장하다. 특히 임진년에 우리나라가 잘 된 적은 별로 없었다. 6.25가 한창이던 1952년 임진년을 중심으로 360년 전 1592년은 임진왜란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성종은 수도인 한양을 버리고 평양으로 천도했다. 그로부터 360년 전은 1232년 고려 때였다. 제1차 몽고침입으로 고려는 수도 개경을 버리고 강화도로 수도를 천도한다.
임진년 전쟁 때마다 왕실은 수도를 버리고 어디론가 천도했다. 1952년에도 수도는 서울이 아닌 부산이었다. 왕을 상징하는 용의 해마다 나라의 환난으로 천도를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동안 임진년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임진년 나라 안팎의 정국을 다양하게 예측도 해보고 걱정도 해봤지만 결국 답은 하나였다. 고난은 피할 수 없고 겪고 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1952년 아버지는 손에 생긴 부상으로 많은 고초를 겪으셨지만 이후 승진도 하시고 일이 잘 풀리셨다. 나 역시 만약 차사고로 화상을 입지 않았다면 더 큰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개인사와 국사가 같을 수 없지만 임진년 한해만큼은 매사 조심하고 싶다. 구설수·관재수·사고수 등이 나를 괴롭힐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다가오는 4월 1일 만우절에 나는 여섯 번째 백일기도를 시작한다. 이번 백일기도는 나라에 닥칠 어려운 고비를 잘 겪고 넘어가길 바라는 기원이 담겨있다. 360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환난(患難)에 앞서 마음을 재정비하고자 기도를 결정했다.
이번 백일기도는 염불하는 마음으로 임하길 바란다. 숨 한번 내쉬고 숨 한번 들이마시면서 회광반조(回光返照)하는 것이 첫 번째다. 회광반조란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뜻으로 언어나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 마음속 영성을 직시하는 것을 말한다. 원시적으로 나를 보는 마음이야말로 올 한해를 무탈하게 보내는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