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윤석민(26)과 한화 류현진(25). '대한민국 원투펀치'인 이들을 보는 선동열(49) KIA 감독은 마음은 어떨까.
선동열 감독은 지난 3일 서울 성균관대 새천년홀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 2부 토크쇼에서 "현역 선수 중 20승이 가능한 투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시즌 20승 이상을 세 차례(1986·89·90년)나 거둔 선동열 감독에게 자신의 후계자를 뽑아달라는 요청과 다름 없었다. 시즌 20승 투수는 2007년 두산 리오스(22승)가 가장 최근이었고, 국내 선수로는 1999년 현대 정민태(20승)가 마지막이었다.
선동열 감독은 "윤석민 선수와 그리고…, 류현진 선수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KIA 선수 대표로 행사에 참석한 윤석민의 얼굴엔 엷은 미소가 스쳤다.
선 감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윤석민과 류현진을 '패키지'로 묶는다. 후계자를 꼽아 달라고 해도 윤석민·류현진, 시즌 MVP를 예상해 달라고 해도 윤석민·류현진이다. 류현진은 신인이던 2006년 18승·204탈삼진·평균자책점 2.23을 기록하며 선동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고, 윤석민은 지난해 17승·178탈삼진·평균자책점 2.45·승률 0.773을 거둬 91년 선동열 이후 20년 만에 투수 4관왕을 차지했다. 21세기 투수 중 기록상으로 선동열 감독에 가장 가까운 둘이기는 하다.
선동열 감독은 지난해 10월 KIA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윤석민과 사제지간으로 만났다. 윤석민을 에이스로 대우하면서도 대한민국 '원톱'으로 꼽지는 않았다. 항상 류현진과 비교하며 윤석민을 자극했다. 소속 선수를 우선적으로 감싸는 여느 감독과는 달랐다.
이는 선동열 감독의 냉정한 평가인 동시에 의도된 전략이기도 하다. 자만하지 말고 라이벌을 이겨내라는 메시지다. '류현진을 뛰어 넘겠다'는 승부욕을 윤석민에게 심어주려는 것이다.
현역 시절 '국보'로 불렸던 선동열 감독에게도 라이벌이 있었다. 영화 '퍼펙트게임'의 소재로 쓰인 고(故)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과의 1승1무1패 맞대결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선동열 감독은 "동원이 형을 뛰어 넘고 싶었다. 그래서 선동열이 있었다"고 말했다. 건강한 라이벌 의식은 선수를 성장시키는 최고의 촉매제가 된다는 사실을 선 감독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선 감독은 자신과 최동원 전 감독이 그랬듯, 윤석민과 류현진이 최고의 라이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계속 자극하는 것이다. 선동열 감독은 "기회가 되면 윤석민·류현진의 선발 맞대결도 피하지 않겠다. 로테이션이 맞는다면 좋은 화제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윤석민·류현진의 라이벌 구도는 선동열 감독이 연출하는 '퍼펙트게임'이다.
김식 기자 seek@jonngang.co.kr
▶선동열과 비슷한 선수는?
투구 유형으로 보면 선동열(49) KIA 감독과 가까운 투수는 윤석민(26·KIA)이다. 선동열 감독이 상대 팀의 류현진(26·한화)을 높게 평가하는 건 자신과 다른 점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선동열 감독은 전형적인 직구-슬라이더 투수였다.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에 오른손 타자 바깥쪽으로 달아나는 슬라이더 두 구종이면 충분했다. 피칭 메커니즘은 드롭 앤드 드라이브(drop & drive). 보폭을 넓혀 몸을 낮춘 후 릴리스 포인트를 최대한 앞으로 끌고 갔다. 직구의 회전력, 슬라이더의 좌우 꺾임이 컸던 이유다.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윤석민도 여기에 가깝다. 선동열 감독만큼 스트라이드가 크지는 않지만 공을 앞에서 던지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선 감독과 같은 오른손 투수다.
반면 왼손 류현진은 톨 앤드 폴(tall & fall)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큰 키를 활용해 공을 떨어뜨리듯 던지는 메커니즘이다. 직구처럼 날아들다 푹 가라앉는 류현진의 서클체인지업이 위력적인 건 그래서다. 게다가 류현진은 부드러운 투구폼 덕분에 대포알 같은 직구까지 던진다.
선동열 감독이 윤석민보다 류현진을 조금 더 높게 평가한 요소는 '안정감'이다. 선동열 감독은 "난 현역 시절 단조로운 피칭을 했지만 류현진은 여러 구종을 원하는대로 컨트롤한다. 20대 초반부터 30대 베테랑 같았던 투수"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