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혈액투석 전문간호사 신경혜(오른쪽)씨가 아이러브안과 박영순 원장의 노안수술로 백내장·노안·근시를 한꺼번에 극복한 후 "대만족"한다고 평가했다. 박 원장이 신씨를 직접 검안하는 모습.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는 빛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일깨워 화제를 낳았다. 시야가 서서히 안개 낀 듯 뿌옇게 되고 흐려지면서 잠재적 실명까지 걱정해야 하는 백내장 환자들은 '눈먼자들의 도시'의 주인공만큼이나 불행하다.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받는 수술 1위인 백내장은 노안과 함께 찾아드는 경우도 많아 나이 든 사람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압구정동 아이러브안과(www.eyeloveilove.com)의 박영순 원장이 시술하는 '노안수술'은 백내장과 노안을 한꺼번에 해결한다. 백내장이 뒤덮은 수정체를 빨아낸 후 2.2㎜의 구멍을 통해 넣은 독일제 특수렌즈가 수정체 자리에서 쫙 펴지는 방식이다. 최소한의 구멍만 내는 노하우로 수술 시간은 단축되고 안전성은 높아졌다. 이 수술 후 싱그러운 중년의 봄을 맞은 세 명의 백내장 여성 환자들을 지난 17일 아이러브안과에서 만났다.
사례1 - 신경혜씨
올 1월 한 백내장 환자가 하루에 양쪽 눈을 모두 수술했다. 보통은 한 쪽 눈을 먼저 수술한 후 경과를 보고 나머지를 한다. 그 과감한 환자는 바로 경기도 평촌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20년 경력의 혈액투석 전문간호사 신경혜(57)씨다.
19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간호사로 투석을 배워 신장 관련 질환의 전문가인 그는 10살 때부터 근시로 안경을 끼고 살았다. 시력은 기껏해야 0.3. 글씨가 안보여 칠판 앞에 착 달라붙어야 했고, 운동도 마음 놓고 하지 못했다. 10대 때인 1960년대에는 안경, 20대 때는 하드렌즈, 그 후엔 소프트렌즈에 의존했다.
50대 들어서면서 노안이 찾아왔다. 기존의 소프트렌즈로는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렌즈 위에다 돋보기를 쓰는 삶이 시작됐다. 눈이 피곤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근시·노안·백내장이 겹친 것을 다초점 안경으로 막으려다 큰 사고가 났다. 2010년 초점이 맞지 않은 탓에 발을 헛디뎌 왼쪽 발등 뼈가 부러졌다. 심을 박는 수술을 한 이후 수영도 못하게 됐다. 운동만 한다고 한면 겁부터 났다.
직장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근거리와 원거리 구별이 안되면서 환자에게 주사 찌르는 일이 두려워졌다. 컴퓨터 화면이 안 보여 긴급 대응하는 능력도 취약해졌다. 신씨는 "3년 동안 눈 수술할 병원을 꾸준히 검증해가며 물색했다. 박 원장이 6년 동안 노안수술을 안정적으로 해낸 케이스들을 보고 아이러브안과를 선택했다"면서 "여기서 검안할 때까지 내가 백내장 중기인지 알 지도 못했다. 믿었기 때문에 양쪽 눈을 한꺼번에 수술했다"고 밝혔다.
수술 중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그는 "왼쪽 눈을 먼저 수술한 지 한 시간 만에 오른쪽 눈을 수술하는데 벌써 왼쪽 눈이 훤히 잘 보였다. 깜짝 놀랐다"면서 "금요일 수술하고 월요일부터 곧바로 근무를 했다. 진짜 미라클"이라고 덧붙였다.
신씨는 소박한 행복을 맛보았다. 생전 처음으로 자신있게 선글라스를 낀 그는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서울대공원 둘레길을 걸으며 "선글라스를 쓸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남편에게 웃음을 터트렸다. 눈이 안보여 눈 화장도 못하던 그에게 40년 만에 찾아든 광명이었다.
사례2 - 박선희씨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거주하는 전직 미용사 박선희(59)씨 시원한 이목구비와는 달리 찡그린 표정을 지을 때가 많았다. 과거 임신중독 상태에서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다가 혼절한 지 나흘 만에 깨어났을 때 세상은 컴컴하기만 했다. 실명이었다. 어렵사리 시력이 돌아오긴 했지만 20대때부터 시력은 0.3에 불과했다. 미용실에서 염색을 해야했기 때문에 시력은 계속 떨어졌다. TV 1m 앞에서도 화면이 잘 안 보였고, 김치에서 머리카락이 나와 딸에게 자주 구박을 받기도 했다. 안경을 쓰기 싫었지만 벗으면 정신이 몽롱해져 아무 의욕이 없었다.
스튜어디스인 딸이 아이러브안과를 신청해놓고 박씨에게 검안을 받아보도록 했다. 백내장과 노안이 겹친 그는 유명한 다른 병원에서 수술이 블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가뜩이나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였다. 박영순 원장은 올 2월 초 검안 후 "수술이 가능하다"고 진단을 내렸다. 오른쪽 눈을 수술한 다음날 안대를 풀렀을 때 세상은 이미 환해져있었다.
스튜어디스인 딸의 새벽 출근을 챙기는 일에 기쁨을 느끼는 박씨는 "수술이 10분만에 끝났고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한쪽 눈만 수술했는데도 TV를 마음대로 보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다"면서 "매사 능률이 올랐고, 확연하게 젊어진 나를 느낀다. 박 원장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사례3 - 이행길씨
"오후 7시쯤 어슴푸레한 상태에서 창문의 빛만으로 책을 보는 데 눈이 너무 편했다. 수술 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서울 광진구 능동의 주부 이행길(51))씨에게 노안수술 이틀 만에 일어난 사건은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됐다. 사실 그는 시력 1.0을 유지할 정도로 눈이 좋았다. 그러나 40대 후반부터 시력이 서서히 떨어졌다. 급기야 바늘귀를 꿰기도 어렵게 됐다. 돋보기 안경을 썼지만 글씨가 퍼져 보였다. 학부모 모임에서도 돋보기를 사용하는 자신이 창피해 위축됐다. 운전을 할 때도 앞이 안 보여 운전대 가까이로 머리를 들이밀 때가 많았다. 하루는 남편이 "왜 그렇게 불안하게 운전하냐"고 묻기도 했다. 백내장이 그의 양쪽 눈을 덮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이씨는 마침 이 수술을 해서 효과를 봤다는 지인의 권유로 2년 전 왼쪽 눈만 박 원장에게 수술받았다. 확실히 좋아졌고 일상에 불편이 없어졌다. 한 쪽 눈을 마저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두 가지 자격증 시험 공부였다. 두 눈의 차이로 인해 책을 볼 때 정확도가 떨어졌다. 그는 지난달 23일 자격증 시험이 끝나자마자 오른쪽 눈도 수술했다. 백내장 치료를 겸한 것이기도 했다.
이씨는 "그 다음날 안대를 푸니 시원한 느낌이었다. 집에 가자마자 바늘귀부터 꿰었다"면서 "10분의 수술 시간도 편안하게 지나갔다. 언니가 예순이 넘었는데 노안수술 하라고 권하고 있다"며 웃었다.
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사진=김진경 기자
[박영순 원장의 Q&A] 백내장 중기에도 노안수술로 치료가 가능한가요?
Q : 백내장 중기에도 노안수술로 치료가 가능한가요?
A : 백내장 초기는 10~20% 진행된 단계입니다. '왜 침침할까?' 스스로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런대로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활에서 보이지 않아 짜증이 나는 정도의 상태라면 백내장 중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도 노안수술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