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물도 초능력 소재와 결합,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중이다. '주군의 태양' '후아유' '처용' 등 올해 귀신보는 초능력자를 내세운 작품들은 '공포물'이라기보다는 로코물이나 미스테리극에 가깝다. 반면 전통 납량물은 KBS '구미호: 여우누이뎐'(10)과 MBC '혼'(09)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올해는 8월중 단막극으로 방송되는 KBS 2TV '엄마의 섬'이 유일하다. 납량물이 사라진 사이,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10) '아랑사또전'(12) '구가의 서'(13) 등 구미호 소재를 판타지 멜로로 소화한 작품들이 등장했고, 올해는 초능력 소재로 변형되는 추세다.
이는 기존 납량물이 소화했던 처녀귀신이나 몽달귀신 등이 소재의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원한을 지닌 귀신의 복수'라는 진부한 설정에 등을 돌린지는 오래됐다. 또한 방송국 입장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미니시리즈 시간대에 호불호가 갈리는 전통 납량물을 편성하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하재근은 "전통적 공포물은 이미 몇년 전부터 브라운관 뿐 아니라 극장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변형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밝혔다.
'후아유' '처용' 등의 주인공은 귀신이 아닌 '귀신보는 초능력자'다. 간간이 귀신이 등장해 보는 재미를 더하지만, 어디까지나 극의 전개를 돕는 단역에 불과하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요새는 리얼리티가 떨어지면 시청자들이 외면한다. 어설픈 분장과 CG로 귀신을 내세워봤자, 놀림감이 될 뿐"이라며 "그보다는 귀신 보는 초능력자가 그 능력을 바탕으로 어떻게 현실적인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게 낫다"고 밝혔다. 최근 '주군의 태양' 제작발표회에서도 소지섭·공효진 등 배우들은 "귀신 보다는 로코 장르와 독특한 소재에 집중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주군의 태양' 제작사인 본팩토리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로코와 호러를 결합한 '로코믹 장르'를 내세웠다. 기획 단계부터 귀신 소재를 뻔하지 않게 다뤄보자는 합의가 있었다"며 "과거 전통 납량물이 유행일 때 이런 작품이 나왔으면 편성이 안 됐을수도 있다"고 전했다. 또한 '후아유' '처용' 등 비슷한 소재의 드라마들이 동시에 등장한 것에 대해서는 "어차피 드라마 제작이라는 것이 오랜 시간과 비용, 인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갑자기 어느 한 쪽에서 베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새로운 납량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를 촉이 빠른 제작자들이 읽은 것이 아니겠나"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