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력은 나빠졌다. 짧은 패스로 줄기차게 상대 수비진을 헤집던 '스틸타카'의 위용은 무더위에 한풀 꺾였다. 그런데 성적은 더 좋아졌다. 지난달 동아시안컵 휴식기 이후 4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서른을 훌쩍 넘긴 황지수(32)와 노병준(34) 등 산전수전을 겪은 백전노장이 무더위에 힘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포항 스틸러스의 한 여름 이야기다. 포항은 11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시티즌과의 K리그 클래식(1부리그) 22라운드에서 1-0으로 승리했다. 후반 14분 '주장' 황지수가 페널티킥으로 결승골을 뽑아내며 힘겹게 승점 3점을 챙겼다. 승점 45점을 기록한 포항은 울산(승점42점)을 따돌리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달 16일 수원전 승리 이후 단 한 경기도 지거나 비기지 않은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포항의 경기력은 전반기만 못하다. 전반기 보여줬던 아기자기한 패스축구가 뜸해졌다. 심지어 한 수 아래로 평가 받는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특히 동아시안컵 이후 경기에서 대구-경남(FA컵)-대전 등 리그에서 하위권팀을 상대로 고전했다. 목적의식이 뚜렷해 이를 악물고 뛰는 시·도민구단의 젊은 선수들의 패기에 주춤했다. 여기에 대구 전 때는 폭우가 왔고, 대전과 경기에서는 잔디가 길어 특유의 플레이가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 내용은 내줬지만 승리는 포항이 챙겼다. 고참의 힘이 컸다. 공격진에서는 나이를 잊은 노병준의 활약이 매섭다. 전반기 내내 주춤하던 그는 후반기 들어 득점포를 가동하며 살아났다. FA컵 8강 경남 원정에서 귀중한 선제골을 넣으며 팀을 4강에 올려놓더니, 정규리그 대구와 경기에서는 폭우 속에서 결승골을 뽑아내 팀의 연승을 이끌었다. 대전과 경기에서는 노련한 플레이로 후반 13분 김한섭의 반칙을 이끌어내 페널티킥을 만들었다. K리그에서만 253경기를 뛴 노련함이 묻은 플레이였다.
수비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 황지수가 돌아오며 안정감이 더해졌다. 황지수는 5월 A대표팀 소집을 앞두고 부상으로 쓰러졌다. 한달 가까이 치료와 재활 때문에 팀을 떠났는데, 이때 포항은 7경기 중 6경기에서 2실점을 할 만큼 수비진이 흔들렸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황지수가 돌아온 이후 리그 5경기에서 무실점 행진을 달리고 있다. 최후방을 지키는 골키퍼 신화용은 "지수형이 앞에서 궂은일을 해주기 때문에 수비진도 편하게 경기한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황지수는 포항에서만 208경기를 소화했다. 포항은 두 노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더위를 뚫고 꾸준히 승점을 챙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