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긱이 야구 마니아 여러분의 질문을 받습니다. 우리는 까다롭습니다. 평소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자주해 긱(GEEK, 괴짜)이라 손가락질 받던 여러분! 세상 누구도 묻지 않았던, 살아있는 질문만 받습니다. 엄격한 질문 선별 과정을 거쳐 긱(GEEK)의 시각에서 진지하게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베이스볼긱은 일간스포츠가 만든 최초의 모바일 야구신문입니다.
Q. 후안 유리베, 야시엘 푸이그, 핸리 라미레스. 중계방송을 보면 유리베나 푸이그 등과만 얘기하는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 검색한 사진도 그렇구요. 클레이튼 커쇼나 안드레 이디어 등 백인하고는 별로 안 친한가 봐요? (이태원에서 강재호)
A. 류현진과 유리베 사이 일명 ‘따귀 사건’영상을 돌려봤습니다. 사건은 지난해 8월 13일 LA 다저스의 홈구장인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메츠와의 경기 도중에 일어났습니다. 류현진 선수가 갑자기 라미레스 옆에 앉아있던 유리베에게 다가가 뺨을 살짝 때렸습니다. 중계 화면만 보면 그리 세게 때리진 않았습니다만, 당황한 유리베는 인상을 팍 쓰며 류현진을 노려봤습니다. 이에 류현진은 멋쩍은 듯 자리로 돌아가 앉았습니다. 이상이 ‘따귀 사건’의 전말입니다.
'따귀 사건’을 접한 국내 팬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당시 저도 그랬습니다. 평소 둘의 장난이 조금은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아왔거든요. 아니나다를까 국내 팬 사이에서는 ‘평소에 장난을 잘 받아주더니 왜 이러냐’는 이야기부터 ‘장난치고는 도가 지나쳤다',‘어떻게 10살이나 많은 형의 따귀를 아무렇지 않게 때릴 수 있냐’는 등 류현진의 돌발행동을 꼬집는 말도 나왔습니다.
‘따귀 사건’ 하나로 갑론을박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평소 류현진의 ‘절친’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유리베의 행동에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이제 류현진이 왕따 당하는 건 아니냐’는 식의 불안감을 토로하는 팬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류현진과 유리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현지 기자들을 통해 ‘그저 장난일 뿐이었다’는 말도 전했습니다. ‘따귀 사건’ 이후에도 둘은 여전히 전처럼 장난을 치고, 서로를 격려하며 친분을 과시했습니다. 오히려 전보다 더 친해진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시즌이 끝나고 류현진은 한 예능 프로에 나와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류현진은 “내가 경기 중 잠시 안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유리베가 자고 왔냐고 하더라”며 “장난하지 말라고 얼굴을 때렸는데 그게 잡힌 것이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결국, ‘따귀 사건’은 국내 팬들이 ‘오버’한 해프닝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따귀를 때리고, 또 맞고도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는 걸까요? 한 팀에서 뛴 지난 1년 동안 두 선수에게는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유학생들도 공감하는 ‘문화’와 ‘언어’ 차이
'한국유학생협회'라는 곳이 있습니다. 영문 약자로 KOSA(Korean Student Association)입니다. 이 단체의 회장을 맡고 있는 신재호 씨에게 물었습니다. 미국 밀워키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신 씨는 류현진의 광팬입니다. ‘따귀 사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신 씨는 “미국인들은 보통 몸을 밀치고 머리를 때리거나 헤드락을 거는 등 신체적 접촉이 포함된 장난에 있어 조심하는 편”이라고 말합니다. 경험적으로 그렇답니다. 대신 “흥이 많고 몸을 많이 사용하는 유색인종들은 서로 부딪히고 때리는 것에 덜 민감한 편이다. 푸이그와 유리베, 류현진 관련 기사를 보면 마치 10년, 20년 지기처럼 격한 장난을 치는데, 그런 짓궂은 장난에 서로 큰 거부감이 없다보니, 철없는 아이들처럼 단시간에 정이 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씨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신씨는 유학 초기 겪었던 일화를 꺼냅니다. “백인들의 경우 영어를 잘못하는 것에 대해 ‘의아함’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상대가 당연히 영어를 구사할 것이라 생각한다. 류현진도 마찬가지일 거라 본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을 때, 예를 들어 ‘What? What? 이런 식으로 되물으면 정말 작아진다.”
신씨 말대로라면 류현진 입장에서는 유리베나 푸이그 같이 어설픈 영어를 하는 선수들을 편하게 느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씨는 “유학 초기 숙소 근처에 백인 아저씨가 운영하는 상점과 멕시코 아저씨가 운영하는 상점이 있었는데, 거의 후자 쪽만 갔다”며 “아무래도 계산대 앞에서 백인 아저씨 앞에 서면 짧은 대화를 하더라도 부담스럽다. 대신 멕시코 아저씨 앞에선 콩글리쉬에 바디 랭귀지를 쓰면서도 당당했다”고 말했습니다.
내친 김에 신재호 회장과 함께 만난 정창현 KOSA 전 회장의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정씨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백인들이라고해서 무조건 우월주의에 빠져 있거나, 동양인 또는 흑인을 배척한다는 것은 얼토당토않다. 다만 그들의 정서상 ‘Private'(사생활)을 존중하고 ’Space'(공간)을 준 것에 류현진이 거리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며 “예를 들어 류현진이 웅크리고 앉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백인들은 아마 ‘뭔가 심각한데 건드리지 말아야겠다’라고 느끼고 건드리지 않는다. 반대로 푸이그나 유리베같은 선수들은 어깨라도 툭 치며 “뭔 일 있냐?”라고 할 것이다. 어느 쪽을 편하게 느끼는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먼 타국 땅에서 생활하게 된 한국인이라면 아마 후자 쪽을 좀 더 따듯하게 느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20살이 넘은 나이에 미국 문화를 경험한 두 유학생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무척이나 공감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들이 유학 초반 ‘언어’와 ‘문화’ 차이로 겪었던 고생들이 떠올랐나 봅니다. 그러면서 류현진이 영어에 익숙해지고, 메이저리그에도 잘 적응한다면, 어떤 선수들과도 잘 지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습니다. 이 것도 역시 경험상 그렇답니다.
마음으로 대화하는 류현진과 유리베
그런데 질문자가 다소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류현진의 ‘절친’으로 알려진 유리베, 푸이그, 라미레즈 등은 중남미 출신입니다. 히스패닉입니다. 에스파냐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에서 태어나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케이스입니다. ‘흑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같은 팀의 애드리안 곤잘레스는 부모가 멕시코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미국인’입니다. 우리로 치면 재미교포 2세입니다. 반면 흑인인 디 고든은 완전한 미국인입니다. 결국 류현진의 절친들은 류현진과 같은 처지입니다. 미국인들의 시각에선 ‘외국인 선수’인 셈입니다.
류현진의 통역을 맡고 있는 마틴 김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지난 8월 미국의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마틴 김은 류현진이 중남미 선수들과 유독 친하게 지내는 이유에 대해 “(외국인 선수로서) 한 때 같은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라며 “적응이 힘들고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에 좀 더 류현진에게 잘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려고 하는 마음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마틴 김은 유년시절을 아르헨티나에서 보내면서 에스파냐어에 능통하다고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때때로 푸이그와 유리베의 통역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마틴 김은 “푸이그는 클럽하우스에서 보면 전형적인 눈치 없는 장난꾸러기 이미지”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이었다면 벌써 몇 대 맞았을 거랍니다. 류현진에게만 장난을 거는 것이 아니랍니다. 하지만 그런 에너지가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반면 유리베에 대해서 마틴 김은 “영어도, 심지어 에스파냐어도 제대로 못한다. 무섭게 생기고, 몸집도 크지만 사람이 진짜 좋고, 착하다. 곰 같다”며 “장난도 재밌게 치지만, 선배라 그런지 눈치도 무척 빠르다. 다른 선수들도 이런 유리베를 좋아한다. 클럽하우스의 기둥과 같은 존재”라 설명합니다. 가끔 보면 류현진과 무언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웃기다고 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대화하는 것 같습니다.
‘투수는 외골수’라는 통념을 뛰어넘은 싹싹한 현진씨
혹자는 류현진과 박찬호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 미국 현지에서 박찬호를 취재했던 한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선배는 대뜸 “류현진이 특이하다”고 했습니다. 박찬호나 김병현과 비교해보면 그렇다고 합니다. 류현진 이전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절친’이라고 할 만한 선수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선배는 “투수는 마운드라는 5.48m 원안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어야 한다. 경기를 끝내기 위해서는 자신만을 믿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투수들이 내성적이고 아집을 갖는 경우가 많다”며 “프로야구 팀 중에 투수가 주장을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근거까지 제시합니다. 정확한 통계 수치는 없지만, 역시 10년 이상 쌓아온 현장 취재 경험에서 우러나온 대답입니다. 그래서 덕아웃이나 클럽하우스 내에서 선수들과 장난을 치는 선수들 중에 투수는 극히 일부라 말했습니다. 이는 경기장 밖에서도 드러난다고 합니다. 일리 있는 분석입니다. 그러면서 류현진이 이런 통념을 시원하게 깨뜨려줬다며 손가락을 치켜 세웁니다.
반면 마틴 김은 박찬호나 김병현과의 직접적인 비교보다는 미국 내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가장 크다고 말했습니다. 마틴 김은 “한인 타운 갈비집을 가면 박찬호가 다저스에서 뛸 당시에는 100% 한국 사람들 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70~80%만이 한국 사람이다. 한국 문화가 미국에 많이 알려져 있고, 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됐다. 또 올림픽, WBC 통해서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야구를 무시할 수 없다는 깨달음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 정준영 교수는 섣부른 일반화를 경계했습니다. 정 교수는 “인종과 무관하게 선수단을 구성하는 각 개인의 성향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를테면 우연히 다저스에 상대적으로 외향적인 흑인 선수와 내성적인 백인 선수가 많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민대 체육학부 이대택 교수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이 교수는 “흑인과 백인, 피부색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취향이 가장 크다. 결국 유유상종 아닌가. 얼마나 열린 마음을 갖고 상대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지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류현진은 한화 시절 외국인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인 대니 바티스타와는 유리베와 푸이그 이상으로 장난을 치는 모습이 많이 보여줬습니다. 류현진의 도움으로 2011년 시즌 중반 합류한 바티스타는 국내 무대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류현진은 멕시코 출신 카림 가르시아와도 잘 지냈습니다. 국내에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중남미 선수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여기엔 이 선수들의 활발한 성격도 한 몫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궁합’이 잘 맞았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