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의 '월드스타' 김연경(26·페네르바체)은 의외로 수다스러웠다. 골치 아픈 계약관련 얘기를 하다 인터뷰가 사담으로 흘러가자 더 좋아했다. 1m93㎝의 큰 키만 특별할 뿐 기자와 마주 앉은 김연경은 평범한 20대 아가씨였다.
지난 6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김연경을 만났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뛰고 있는 김연경의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지난달 재확인한 이후 첫 인터뷰다. 김연경은 페네르바체는 물론 전세계 어느 팀으로도 갈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됐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도 그는 "(신분문제가 해결됐지만) 솔직히 기쁘지도 않았다. 너무 길어서 힘들었다는 생각뿐"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큰 키와 파워 넘치는 플레이, 그리고 단발머리를 보면 김연경은 선머슴 같다. 그러나 소소하게 요리하는 걸 즐기고, 기회가 오면 섹시화보를 찍고 싶다는 말도 했다. 인터뷰기 길어질수록 그의 '반전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신분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참 괴로웠어요. 원소속팀 흥국생명과도 불편한 관계가 되어 힘들었죠. 어찌 됐든 흥국생명은 제가 성장한 팀이잖아요. 나중에 은퇴는 흥국생명에서 하고, 지도자도 하고 싶었는데….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우리 선수들 중 해외에서 뛸 선수가 더 있지 않나요.
"선수들이 제게 많이 물어봐요. 어린 선수들이 큰 무대에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양효진(25·현대건설) 선수도 지난시즌 끝나고 FA가 돼서 해외진출을 고민했는데 결국 잘 안 됐죠. 쉽지 않은 결정인 건 맞아요."
-김사니 선수(로코모티브 바쿠)는 자주 연락하나요.
"그럼요. 자주 할 때는 일주일에 5번도 해요. CEV컵에서 대결하진 못했지만 만나서 얘기도 했어요. 언니는 어머니가 함께 가셨지만 생활하기는 불편하다고 하던데요. 아제르바이잔이 터키보다는 조용하고 아무 것도 없어서. 요즘에는 팀에서도 기회를 많이 얻는 것 같더라구요."
-페네르바체도 성적이 좋아요. 정규리그 2위를 달리고 있고, CEV컵 결승에도 올랐죠.
"지난해는 부상 선수들이 많았지만 올해 분위기가 좋아요. 선수구성을 보면 챔피언스리그에도 나갈 수 있는데 컵대회에 나가게 돼서 아쉬워요. 꼭 우승해야죠."
터키여자리그는 유럽 최고 수준이다. 리그 3위까지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수 있다. 그러나 페네르바체는 지난해 4위에 머물러 한 단계 아래인 CEV컵에 출전하고 있다. 김연경은 서브 1위에 오르는 등 리그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혼자 생활한다고 들었어요. 불편하지 않나요.
"어머니가 같이 계시다가 얼머 전 한국으로 들어가셨어요. 그래도 제 걱정을 안 해요. 식사도 제가 해 먹어요. 웬만한 요리는 다 해요. 김치찌개는 기본이고, 닭볶음탕, 오징어덮밥 등 모두요. 한 번 드셔 볼래요?(웃음) 한국에서는 요리를 전혀 못 했고, 일본에서도 숙소 생활을 하느라 식당밥을 먹었어요. 그런데 여기 온 뒤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 하게 됐어요. 요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소치 올림픽에 앞서 이상화 선수가 섹시화보를 찍어 화제가 됐어요.
"(사진을 보니) 예쁘네요. 예전에 화보를 찍은 적이 있는데 하나는 남성적인 콘셉트였고, 다른 하나는 여성적으로 해봤어요. 섹시 콘셉트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연락만 주세요.(웃음)"
-보기와 달리 여성적인 면도 있네요.
"보이시해 보이지만 친한 사람들은 여성스러운 면이 있다고 해요. (저도 다른 여자들처럼) 외출 준비할 땐 한 시간 정도 걸려요. 집도 굉장히 깨끗하고요."
-결혼 생각은 없나요.
"남자친구가 없어요. 선수생활 그만둘 때까지는 결혼을 미뤄야할 것 같아요. 결혼하고 뛰는 선수들도 있지만 지금은 운동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터키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있나요.
"가끔씩 '킴'이라고 부르면서 같이 사진 찍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킴'이 터키어로 '누구(Who)'란 뜻이에요. 그래서 팬들이 이름을 물었을 때 킴이라고 대답하면 막 웃어요. 가끔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경기장에 응원도 와주세요. 참 고맙죠."
-페네르바체와 계약기간이 곧 끝나는데 이적할 생각도 있나요. 러시아 이적설도 있어요.
"여기 생활이 참 익숙해졌고, 선수들과도 잘 지내요. 처음에는 내 팀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3년째 뛰니까 이젠 달라요. 감독님도 예전보다 더 챙겨주시고요."
김연경의 에이전트인 인스포코리아의 임근혁 과장은 "다른 조건들도 중요하지만 김연경 선수가 현재 팀을 마음에 들어한다. 조만간 페네르바체와 재계약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번 시즌 김연경의 연봉은 15억원이다.
-올해는 쉴 틈이 없겠네요.
"8월에 한국에서 그랑프리 대회가 있어요. 9월 인천 아시안게임도 나가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도 은메달이었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제가 MVP(최우수선수상)을 받았지만 대표팀은 4위였잖아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꼭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 금메달 따고 광고도 찍고 싶어요. 키가 크니까 우유 광고가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