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월화극 '밀회'는 유독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드라마다. 특히 배우들의 연주 장면 및 음악계 전반에 대한 촘촘한 묘사 때문에 '의학계를 뛰어나게묘사한 '하얀거탑'의 뮤지션 버전'이란 말까지 듣고 있다.
지난 7일 방송된 '밀회'는 유아인(이선재)이 서한음대 장학생 선발 오디션에서 피아노 독주를 선보이는 모습을 내보냈다. 표정부터 손 동작 하나까지 실제 피아니스트처럼 완벽하게 살려내 시선을 뗄수 없게 만들었다. 앞서 음악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를 끌었던 경우는 있었지만 그중 '밀회'는 유독 연주 장면을 리얼하게 표현해 방송관계자들까지 놀라게 만들고 있다. 매번 연주 장면이 전파를 탈때마다 게시판에는 '실제 연주자들의 모습을 찍은 다큐멘터리 같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지난달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안판석 감독도 "촬영장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다가 문득 '내가 다큐를 찍고 있는건가'싶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는 말을 했다. 피아노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다던 유아인이, 그리고 김희애 등 출연진들이 그만큼 연주 장면을 리얼하게 살려내고 있다는 말이다. 김희애와 유아인의 멜로 등 여러 인기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음악이란 소재를 멋지게 활용해 매회 상승세를 타고 있다. 7일 방송분 역시 시청률 4.9%(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광고 제외 기준)를 기록했다. 분당최고 시청률은 6.1%까지 치솟았다.
▶준비기간만 3년, 음악적 소양 갖춘 대본에 전문가 도움까지
음악계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가능할수 있었던 건 3년여에 걸친 철저한 준비기간 덕분이다. 시놉시스가 나온 건 2011년. 정성주 작가는 그 때부터 꾸준히 클래식과 음악계에 대한 조사를 했다. 지난해말부터는 본격적으로 자문위원까지 두고 세부적인 부분을 수정해나갔다. 피아니스트 김소형이 자문위원 역할을 했다.
'밀회' 측 관계자는 "제작진이 클래식에 조예가 깊어서 초반 준비하는 과정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드라마에 삽입된 곡도 전적으로 자문위원에게 의존하는 게 아니다. 먼저 정성주 작가가 이 장면엔 어떤 곡을 하고 싶다고 의견을 내면, 자문위원이 피드백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자문위원이 더 좋은 곡을 추천하거나 정 작가가 선택한 음악 중 가장 곡을 선택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제작진이 음악에 대한 지식과 소양을 갖춘 상태에서 자문위원의 전문성까지 곁들여져 이런 드라마가 만들어질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음악계의 비리 등 '생태계'를 다룬 장면들도 철저한 사전준비를 거쳐 만들어졌다. 안판석 감독과 정성주 작가는 제작단계에서 음악계 전문가들을 만나 미팅을 하고, 음악계 내부 시스템과 환경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상황과 인물들은 엄연한 '픽션'이다. 하지만 실제 음악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업하며 '현실성'을 놓치지 않는데 중점을 뒀다. 현재 '밀회'에서 묘사되고 있는 음악계 내부의 권력다툼과 비리 문제는 실제 음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일어날수도 있을만한 일을 잘 묘사했다' 또는 '유사한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반응이다.
▶실제 음악인 출연 리얼리티 살려
실제 음악인들의 출연은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한층 더 살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밀회'에 등장하는 실제 음악인은 총 5명. 신지호·진보라·박종훈 피아니스트가 출연 중이다. 신지호는 극 중 유아인의 라이벌이 되는 지민우 역을, 박종훈은 박혁권(강준형)의 반대편에 서 있는 교수 조인서 역을 맡았다. 진보라는 음대에 부정입학하는 정유라를 연기하고 있다. 가천대 관현악과 첼로 전공 4학년인 김신재 양도 등장한다. 교수에게 악기 구매를 강요당하는 신입생 음대생을 연기했다. 여기에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배우 김혜은이 서한 예술재단 산하 아트센터 대표 서영우 역으로 출연 중이다. 김혜은은 음악 전공자라 촬영장에서도 본인의 경험에 입각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음악 전문가라고해서 무작정 드라마에 출연시킬수는 없는 노릇. 연기 및 카메라에 적합한 인물인지 테스트하기 위해 제작진은 전문 음악인을 상대로 오디션까지 치렀다. 공연예술 업체와 자문위원인 김소현 피아니스트, 음악학회 관계자의 추천을 통해 오디션을 치를 음악인들을 모았다. 이들 중 캐릭터에 가장 부합하면서 연기력까지 갖춘 음악인들이 선택됐다. 제작진은 "오디션을 본 분들 모두 실력이 훌륭했다. 다들 유명하신 분들이었다. 그 분들 중 캐릭터에 가장 적합한 이미지를 찾는 과정이 바로 오디션이었다"며 "사실 출연료는 많지 않다. 하지만 신지호·진보라·박종훈·김신재 씨 모두 클래식의 대중화에 큰 뜻을 두고 출연을 결심했다. 드라마를 통해 클래식이 좀 더 대중들에게 친근한 장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연했다. 밤을 새워서 촬영할 때도 있고 체력적으로 힘들텐데 매번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한다"고 전했다.
▶유아인·김희애의 맹연습
주연배우 유아인·김희애도 맹연습을 통해 대역 없이 완벽한 연주장면을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노력 덕분에 듀오로 연주한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 연주신이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에서 음악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제작진은 "연주 장면에서 나오는 소리는 전문가가 따로 연주한 것이다. 하지만 배우의 손과 몸은 대역을 쓰지 않고 있다. 유아인과 김희애는 연주신을 앞두고 전문가가 미리 연주한 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곡을 듣고 외운다. 유아인이 곡의 흐름에 맞게 피아노 건반을 리얼하게 짚어내는 것도 이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 완성도 높은 연주신을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아인과 김희애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을 찍는 날엔 촬영장에 김소형 피아니스트가 항상 온다. 디테일하게 모션 체크를 해준다"며 "유아인의 경우엔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나 전문가의 조언을 금방 습득하고 연기로 소화해낸다. 전문가들도 유아인이 피아노를 치는 영상을 소리 없이 보면 실제로 연주하는 것 같다고 감탄할 정도"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