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노경은(30)의 목소리는 편안했다. 지난 상처를 털어내고, 새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고 했다.
노경은에게 올 시즌은 '상처'였다. '미완의 대기'로 남아있던 그는 지난 2012년 12승6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53을 기록하며 데뷔 10년 만에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이듬해에도 10승10패 평균자책점 3.84를 올리며 마운드를 든든히 책임졌다. 그를 향한 주변의 기대가 점점 더 커진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올 시즌 '토종 에이스' 노경은은 없었다. 그는 올 시즌 3승15패 평균자책점 9.03에 그치면서 리그 최다패의 불명예까지 떠안았다. 데뷔 후 최악의 부진이었다.
언제까지 과거의 기억에만 붙잡혀 있을 수는 없다. 새로운 기억을 써내려가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최근 이사를 하며 새출발에 나섰다. 데뷔 후 줄곧 화곡동에 살았던 그는 얼마전 잠실구장 근처로 이사를 했다. 노경은은 "성적이 안 좋아서 투자를 더 많이 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최고의 환경으로 왔다. 이사한 집이 야구장도 가깝고, 지하에는 헬스장 시설도 잘 돼있다"고 설명했다. 야구장을 오가는 1~2시간을 아껴 운동을 더 하거나, 휴식을 더 취할 수도 있다. 그는 "12월부터는 교대 쪽에서 회복운동을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야구만' 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이다. 그는 "운동 외에는 신경을 쓰는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있다. 시즌을 치르는 동안 극심한 마음 고생을 했던 그는 일부러 더 "긍정적으로"를 외치고 있다. 노경은은 "스트레스도 정말 많이 받았다.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배운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그 어떤 처방도 통하지 않았던 시즌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 역시 더 단단해져 가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마무리 훈련을 떠나기 전 노경은과 면담 자리를 갖고 "다 잊어라"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노경은은 "내가 워낙 생각이 많고 예민한 편이다. 감독님께서 그걸 알고 '생각하지 말고, 미트만 보고 던져라'고 말씀하시더라"고 말했다.
그 역시 감독의 뜻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이젠 더 떨어질 데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1년만 잘 한 뒤 2년 차에 이렇게 부진했으면 더 답답했을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올해 부진했던 건 약으로 삼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