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에 올해의 청사진이 들어 있다. 2016년 병신년을 맞아 10개 구단 별로 시무식을 열고 있는 요즘 KBO리그 얘기다. 그저 연례 행사라고 흘려 듣진 말길. 감독이, 대표가, 또는 선수가 올시즌의 포부를 내놓는 이 행사에서 그들의 목표까지 엿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들은 어떤 부분을 강조했고, 현장에서 기자들은 무엇을 인상적으로 들었을까. 시무실 당일에 쏟아진 기사를 토대로 키워드를 분석해 봤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계약된 주요 스포츠 매체 31개가 그 대상이다. 올시즌 판도를 예측할 힌트가 되길 바라며.
★SK 와이번스
SK는 올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장과 주장 자리에 새 얼굴이 들어선 것이다. 류준열 신임 사장은 임원일 대표에 이어 SK의 5대 사장으로 역임했다. 프로 데뷔 이후 SK에서만 10년을 보낸 김강민도 생애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찼다. 시무식에서 이들의 키워드가 담긴 기사가 가장 많이 쏟아진 건 당연한 일이다. 류준열-신임사장 등의 기사는 가장 많은 점유율을 차지했다. 전체 중에 5분의 1이 넘는다. 김강민-주장-리더 등의 키워드 역시 그에 못지 않다. 김강민은 김광현, 최정, 박희수 등 당일 언급된 모든 SK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점유율을 차지했다.
김용희 감독은 류준열 대표이사보단 적지만 김강민 보다는 많았다. 김 감독의 연관 키워드는 마무리, 박희수, 그리고 ‘불광불급(不狂不及)’ 등이다. ‘미치지 못하면, 미칠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진 이 사자성어는 김 감독과 올시즌 SK의 행보를 가늠케 하는 것이다. 지난 해 정규시즌 5위를 차지하며 와일드카드전에 진출한 SK. 2016 시즌에는 ‘모두 미친’ 선수단이 그때의 성적을 넘어설 수 있을까.
덧붙여: 이승호 등 트레이드로 다시 한식구가 된 선수나 신인들도 키워드에 등장했다 이중 눈여겨 볼만 한 선수가 있다. 바로 정영일이다. 인기스타인 이재원과 맞먹을 정도의 언급량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의 꿈을 잠시 접고 돌아온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겠다.
★두산 베어스
같은 날 시무식을 치른 두산도 살펴 보자. 다소 다른 점이, 감독이나 사장이 아닌 다른 이가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은 공필성 신임 2군 감독. 선수 시절부터 은퇴 후 코치 생활을 할 때까지 오랜 시간 롯데 유니폼을 입어 온 그가 두산에 왔다. 타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이기에 주목도가 더 컸을지 모르겠다. 공필성 2군 감독은 “김태형 감독님을 보필해 팀에 일조하겠다”고 소감을 남겼다. 공 감독과 함께 두산팬들에게 첫인사를 드린 유태현 코치도 비슷한 이유로 키워드를 생산했다.
선수 가운데 가장 흔히 이름을 보였던 이는 두 명이다. 정재훈과 김재호다. 주목 받을 만한 제각각의 사연이 있다. 정재훈은 프로 데뷔 시즌인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두산 유니폼만 입어왔던 선수다. 그러던 그가 작년 롯데로 떠났다가 2차 드래프트를 통해 1년 만에 돌아왔다. 정재훈이 인기 키워드 등극 비결은 ‘재회의 기쁨’ 정도가 되지 않을까? 김재호도 만만치 않은 두산의 터줏대감이다. 2004년부터 줄곧 두산에서 프로 생활을 꾸려 왔다. 시무식 인기 스타의 비결은 따로 있다. 바로 주장 등극이다. 오재원에 이어 완장을 넘겨 받았다. 두산의 ‘주장=예비 FA’ 공식은 올해도 유효하다.
10개 구단 중 두산만이 가질 수 있었던 키워드 하나. 바로 ‘V5’와 우승이다. 15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두산의 뚝심은 올해도 유효하다. 그렇다고 나태해진 건 아니다. 김태형 감독은 “달콤한 우승의 기억은 잊고 올시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넥센 히어로즈
역시 ‘빌리 장석’이다. 6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의 시무식에서 이장석 대표는 이목을 잡아 끌 줄 알았다. 선수들의 대거 유출로 넥센이 하위권에 분류됐다고 하자 “주위 평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올해는 넥센이나 이 대표에게 뜻깊은 한 해다. 2007년 프로야구판에 뛰어든 이후 보금자리로 삼던 목동 구장을 처음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2016시즌부터 넥센은 고척 스카이돔을 홈구장으로 쓴다. 다른 구단과는 달리 ‘목동’이나 ‘고척돔’ 등의 야구장 키워드가 발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카메라의 플래시 세례를 받은 이는 따로 있었다. 2013년부터 팀을 가을야구로 이끈 염경엽 감독도, 새 주장을 맡은 서건창도 아니다. 바로 박병호다. 엄밀히 말해 더 이상 넥센 선수가 아닌 이가 넥센 시무식에서 발생된 이슈 키워드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포스팅을 통해 올해부터 미국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활약할 박병호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친정팀의 시무식을 찾았다. 등장과 동시에 현장에 있던 모든 미디어가 그를 주목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올시즌 박병호가 내려 놓은 넥센의 간판 스타 자리를 누가 이어 받을까.
조상우는 시무식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많은 키워드를 차지했다. 염경엽 감독의 “올시즌 조상우를 선발로 쓰겠다”는 발언 덕이다. 밴헤켄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구멍이 난 선발의 한축을 조상우로 메우겠다는 복안이다. 조상우 역시 “선발은 나의 오랜 꿈”이라며 이런 도전을 반겼다. 지난 시즌 조상우는 70경기에 등판해 8승 5패 5세이브 19홀드 평균자책점 3.09라는 합격점을 받았다. 조상우의 공이 불펜에서가 아닌, 선발에서도 통할지 주목해 보자.
★롯데 자이언츠
롯데는 정말 달라질까. 11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시무식에서는 독한 말들이 오고 갔다. 주장 강민호는 “’꼴데(꼴찌와 롯데의 합성어로 팀을 낮춰 부르는 말)’스럽다고? 겨우내 팀이 많이 변화했다”고 말했다. 이창원 사장 역시 “과거 영광은 잊자”며 “더 이상 꼴데스럽다는 말은 듣지 말자”고 다짐했다. 지난 시즌에 8위, 2014 시즌에는 7위, 2013 시즌엔 5위에 그치며 최근 3년을 내리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현실을 통렬하게 반성한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단다. 독한 자아성찰 속에 희망도 엿봤다. 신임 감독 조원우를 제외한다면 특정 부분에 키워드가 몰렸다. 윤길현-손승락-불펜이 그것이다. SK와 넥센의 핵심 불펜 요원이던 윤길현과 손승락은 이번 FA를 통해 롯데의 유니폼을 입었다. 윤길현은 12시즌 통산 495경기에 나와 34승 27패 28세이브 78홀드 평균자책점 3.96을 기록했다. 손승락은 8시즌 통산 382경기에 나와 30승 35패 177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점 3.68을 기록했다. 둘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정상급 불펜 투수다. 이 둘은 롯데의 숙원인 ‘불펜 강화’에 일조할 수 있을까.
재미있는 키워드도 눈에 띈다. 바로 황재균과 ‘10번’이다. 올시즌 손아섭과 함께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신청했다 시장의 냉정함만 체감하고 돌아온 선수다. 황재균은 지금껏 달고 있던 13번을 내려 놓고 10번으로 등번호를 바꿨다. 10번은 이대호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롯데에서 쓰던 번호다.
★삼성 라이온즈
삼성의 2016년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한 해일 것이다. 도박 사건으로 작년 가을부터 지금껏 몸살을 앓아왔고, 그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희망도 있다. 먼저 원년 시절부터 쓰던 대구구장을 떠나 라이온즈 파크로 터전을 옮긴다. 게다가 지난 시즌 신인왕인 구자욱은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무한해 보인다. 이케빈은 제2의 구자욱이 될 만한 신인이다.
이런 기류는 시무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11일 경산 볼파크에서 열린 삼성의 시무식에서는 여러 색깔의 키워드가 존재했다.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안지만과 윤성환이다. 도박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함께 홍역을 치른 오승환의 이름도 자주 등장했다.
이날 시무식에서는 사장 이취임식도 열렸다. 김동환 신임 사장과 김인 전 사장의 키워드가 등장한 것은 그래서다. 김동환 사장은 “시련이 자양분이 될 것”이라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또한 삼성 라이온즈란 구단이 명품브랜드가 되길 당부하기도.
삼성엔 스타가 많다. 그중에서도 간판급 거물이 있었으니, 이승엽이다. 존재감만으로도 선수단을 이끌 수 있는 ‘전설’이자 프랜차이즈 선수. 그런 그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불혹을 맞이한 이승엽은 2년 뒤 은퇴를 예고했다. “목표는 우승”이라고 다짐한 이승엽이 선수 생활의 ‘화룡점정’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