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은 2009년 첫 할리우드 작품 '지.아이.조-전쟁의 서막' 이후 할리우드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며 존재감을 넓히는데 성공했다. 수 많은 아시아계 배우 중 한 명이 아닌 이병헌의 이름 석자를 알리는데 성공,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다. 7년 만에 완성한 결실이다. 한국 배우 중 할리우드 작품에 진출한 경우는 있지만, 이병헌의 행보는 단연 독보적이다. 이병헌처럼 꾸준히 할리우드에서 러브콜을 받고 인지도를 쌓아간 배우는 전무후무했다. 이병헌은 어떻게 할리우드에 안착할 수 있었을까.
▶'달콤한 인생'·'놈놈놈' 덕에 '지.아이.조'·'레드' 캐스팅
사실 이병헌은 고도의 전략으로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한 건 아니었다. 탄탄한 연기력에 행운이 따른 케이스다. 준비가 된 배우였기에 찾아온 기회를 꽉 잡을 수 있었다. 할리우드 진출 프로젝트가 가동된 건 2005년이었다. 줄리아 로버츠·휴 그랜트·니콜 키드만 등이 속한 미국 최대 에이전시 CAA 상당수 직원이 칸 영화제에서 이병헌의 주연작 '달콤한 인생(2005)'을 보고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 CAA 측은 이병헌의 연기를 보고 '아시아의 제임스 딘'이라고 극찬했다. '달콤한 인생'에 이어 '좋은놈, 나쁜놈,이상한놈(2008)'까지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이병헌은 에이전트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진=영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 캡쳐
사진=영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 캡쳐
CAA와 계약 후 할리우드 진출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에 캐스팅됐다. 스타트에 성공한 뒤엔 자연스럽게 러브콜이 이어졌다. '지.아이.조-전쟁의 서막' 제작PD들이 '레드 : 더 레전드'를 하게 되면서 이병헌에게 오디션의 기회가 먼저 찾아왔다. 직접 발품을 팔지 않아도 오디션 기회가 찾아왔던 것. 현장에서 그의 연기와 에티튜트를 좋게 본 제작PD와 영화 관계자들이 이병헌을 적극 추천했고, 지난해 개봉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 악역 T1000을 맡았다. 이병헌이 출연한 세 작품 모두 미국 현지 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이병헌의 인지도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이젠 오디션을 보지 않고, 필모그래피 만으로도 캐스팅이 되는 배우가 됐다. 사실상 할리우드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올해는 알 파치노·안소니 홉킨스와 호흡한 '미스컨덕트'에 이어 덴젤 워싱턴·크리스 프랫 등과 출연하는 '황야의 7인'을 선보인다. '황야의 7인'은 액션과 대사, 비중 면에서 그가 출연한 할리우드 작품 중 가장 주목할 작품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병헌 소속사 측은 "'지.아이.조' 촬영 때만 해도 이병헌이 누군지 아예 몰랐다고 보면 된다. 하얀 가죽 의상을 입고 10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그날 촬영이 무산되서 돌아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지금은 크레딧이 생겼고, 레퍼런스가 있으니 무작정 신인 취급을 받진 않는다. '지.아이.조'와 '레드', '터미네이터' 등 작품이 현지에서 관심을 끌면서 이병헌의 얼굴도 많이 알려졌다. 프로필이 생겼기 때문에 요즘엔 에이전트를 통해서 시나리오가 들어온다"고 전했다.
사진=영화 `황야의 7인` 티저 캡쳐
사진=영화 `황야의 7인` 티저 캡쳐
▶이병헌이 어필한 매력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수 많은 아시아계 배우 속에서 이병헌이 어필한 매력은 '연기력'이었다. 아시아계 배우 1~2세대가 할리우드에서 주목받을 수 있었던 건 액션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연걸·성룡·주윤발이 먼저 액션 연기로 주목을 끌었기 때문에 이병헌 역시 발차기로 승부수를 볼 순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할리우드 내에서 아시아 배우들의 액션에 흥미나 신비로움이 떨어진 상태이기도 했다.
이병헌 소속사 측은 "액션이 아닌 연기로 할리우드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달콤한 인생'이나 '놈놈놈'이 좋은 평가 받았던 이유도 액션이 아닌 연기 덕분이었다. '연기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게 목표였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분량도 최선을 다해 임했다"고 말했다.
한류스타라는 것도 강점이었다. 할리우드가 최근 아시아 영화시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며 중국·일본·한국 시장을 공략한 영화를 제작·투자하기 시작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병헌은 그런 점에서 적격이었다. 영화 관계자는 "할리우드는 더이상 미국 관객만을 위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수익 면에서 효과가 좋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놉시스 단계에서부터 아시아인 캐릭터를 넣는 것도 이런 이유"라며 "이병헌은 이미 아시아에서 폭 넓게 사랑받고 있는 한류스타이고, 할리우드 작품에 많이 출연한 중국 배우들 보다 신선한 페이스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이 점이 어필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