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12년 만에 정식 종목으로 부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올림픽에서 야구를 볼 수 있다니, 참 기쁘고 좋은 일이다.
그 덕분에 올림픽에 얽힌 추억들이 떠올랐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부터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LA 다저스 소속인 박찬호를 비롯해 몇몇 프로 선수들이 아마추어 선수들과 함께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그때 금메달을 따면서 다 같이 병역 대체 복무 혜택을 받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은 처음으로 각국 프로 선수들이 참가한 올림픽이었다. 미국은 트리플 A와 더블 A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다. 일본은 사상 최강의 대표팀이 출범했다. 마쓰자카 다이스케·마쓰나카 노부히코·나카무라 노리히로·다구치 소를 비롯해 당시 일본 프로야구의 굵직한 스타들이 전부 포진했다. 한국도 처음으로 프로 선수들이 주축이 된 '드림팀'을 꾸렸다. 그때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로 참가했던 선수가 바로 정대현(롯데·당시 경희대 재학)이다.
나 역시 김응룡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 투수코치로 참가했다. 미국이 금메달, 쿠바가 은메달, 한국이 동메달을 땄다. 그때까지만 해도 올림픽을 비롯한 아마추어 대회는 쿠바 야구의 독무대였다. 올림픽 금메달도 계속 쿠바가 가져갔다. 그러나 프로 선수들이 참가하면서 쿠바가 금메달을 놓쳤다. 한국 야구도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 막강한 일본을 밀어내고 수확한 동메달이라 더 값진 결과였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마지막 결과는 좋았지만 대회 기간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예선 기간 동안 회식을 한 차례 했는데, 식사가 끝나고 일부 선수들이 카지노에 갔다가 기자들의 눈에 띄었다. 이튿날 한국에 대서특필 보도되면서 난리가 났다. "유명 선수들이 대회 기간에 경기에 집중하지 않고 도박을 했다"고 비난이 쏟아졌다. 그건 카지노에 간 선수들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국민 타자' 이승엽은 그 기사에 덩달아 이름이 포함돼 무척 억울해졌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승엽은 그때 카지노에 가지 않았다. 그 시간에 숙소에서 라면을 끓이는 모습을 내가 직접 봤다. 최근에도 이승엽과 통화를 하다 그 얘기가 나왔는데, "그때 무릎이 안 좋아서 박경완(SK 코치) 선배를 포함한 몇몇 선수와 함께 숙소에서 라면을 먹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기사에는 이승엽도 카지노에 함께 갔다고 이름이 나온 것이다. 한국에서도 "어떻게 된 거냐"고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승엽 성격에 그 상황에서 저 혼자 "난 안 갔다"고 부인하고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6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렇게 얘기해 본다.
그 시절에도 유독 일본전에 강한 '일본 킬러'들이 있었다. 물론 다른 선수들도 다 잘했지만 이승엽은 일본만 만나면 특히 더 잘했다. 동메달 결정전 때 0-0이던 8회 2사 2·3루서 '괴물 투수' 마쓰자카를 상대로 결승 2타점 2루타를 친 게 최고의 장면이었다. 구대성도 대단했다. 그 경기에서 공 150개를 넘게 던지면서 9이닝 1실점으로 완투했다. 투구 수가 너무 많아진다 싶어서 경기 후반 마운드에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구대성이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고 했다. 그때까지 구대성과 마쓰자카 둘 다 무실점으로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정신력이 엄청났다. 어쩔 수 없이 투수를 바꾸지 못하고 내려왔는데, 진짜 구대성이 끝까지 막아 줬다. 지금 돌이켜 보면 추억이 많았던 올림픽이다.
2004 아테네올림픽 때는 한국이 삿포로 예선에서 대만에 패해 아쉽게도 본무대에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으로 어마어마한 금메달을 땄다. 그때도 이승엽이 준결승과 결승에서 홈런을 치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 에이스 류현진도 대단한 활약을 했다. 올림픽에서 단체 구기 종목 금메달을 딴 것 자체가 정말 큰 성과다. 그 금메달이 야구 열기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2009년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이 이어지면서 야구의 부흥기가 시작됐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야구의 올림픽 재진입은 충분히 반길 만한 일이다. 2020년 올림픽은 야구 인기가 높은 일본에서 열린다. 그 점이 올림픽 야구의 부활에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인 만큼 일본이 많이 노력했을 것이다. 도쿄올림픽 이후에도 야구가 계속 올림픽에 남으려면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협조가 꼭 필요하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치르는 경기가 올림픽 아닌가.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축제다. 메이저리거들이 이 무대에 나온다면 야구 붐을 일으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야구라는 종목 자체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WBC도 메이저리거들이 출전해 권위를 인정받지 않았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이나 선수 노조에서도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하다. 물론 대회 시기상의 문제가 있지만 야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계속 유지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도 메이저리거들이 모두 참가하는 최고의 대표팀을 꾸릴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KBO 리그는 승부 조작 등과 같은 악재로 혼란스럽다. 그래도 젊은 선수들이 이 위기를 잘 넘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올림픽에서 다시 좋은 활약을 펼치는 한국 야구 대표팀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