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7000만원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도전장을 내민 배우 세계다. TV를 시청하다 하주 작은 글씨로 지나가는 오디션 자막 공고가 본 방송보다 더 크게 보였다는 허성태(38). 무작정 신청했던 연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5등을 차지했을 땐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지만 진짜 고충을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반대하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배우 생활을 시작한 허성태는 소속사도 없이 직접 프로필을 돌리기 시작했고 오디션만 200여 번을 넘게 보며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충무로가 주목하는 기대작 '밀정'(김지운 감독)에 당당히 합격한 그는 송강호에게 뺨따귀를 맞는 '한 방'을 건져내며 익숙한 배우들 사이에서 신선한 비주얼로 관객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운이 술술 풀리는 것일까. 이미 확정지은 차기작 역시 '밀정'에 버금가는 대작 '꾼'(장창원 감독)이다. '밀정'에 비해 더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역할이라고 하니 눈여겨볼 만 한 배우임엔 틀림없다.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그에 비례하는 결실은 달콤하다.
※인터뷰 ①에서 이어집니다.
-'밀정' 개봉 후 주변에서 좋은 얘기도 많이 듣지 않았나.
"오히려 겁을 많이 주셨다. 완성본을 보기까지 조금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스태프 분들이 '성태 너 어느 부분 짤리더라. 빠졌더라. 살아났던대?'라면서 편집 과정을 전달해 주셨다. '나를 위한 이야기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곳 저곳에서 들리다 보니까 그럴 일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조급해 지더라."
-그래도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나.
"다른 배우 분들께 죄송할 정도로 편집이 많이 안 됐다. 물론 나도 빠진 장면들이 있지만 다른 조, 단역 배우들, 또 삭제 비중만 따지면 분량이 더 많은 선배들이 더 많이 삭제된 경우도 있어서 내가 그 앞에서 투덜거릴 수는 없었다." -VIP시사회 땐 많은 영화인들이 '밀정'을 관람했을텐데.
"내가 '상의원'에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VIP시사회 뒤풀이에서 이원석 감독님을 만났다. 감독님께서 먼저 사진을 찍자고 하시더라. '상의원' 땐 곁에 갈 엄두도 안 나는 높은 감독님이었다. 그런 감독님이 '밀정'을 너무 잘 봤다고 해주시니까 왠지 진짜 배우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얻은 성과가 아닐까.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하고 준비했다. 여러가지 주문이 있을 수 있으니까 여러가지 톤을 연습했다. 사실 캐스팅이 되고 나서도 '너 어떻게 해낼래'라는 생각에 잠을 많이 못 잤다. 촬영 전까지 잠을 푹 잔 적이 없고 촬영 때도 마찬가지였다. 태구와 국수가게에서 만났을 때 대사를 수도 없이 반복하니까 아내가 'TV 좀 보자. 그만 해라'라고 툴툴거리기도 했다. '알았다'고 하면서도 '근데 괜찮아?'라고 물어봤다. 몰랐는데 어느새 아내도 대사를 다 외우고 있더라.(웃음)"
-아내 분에게 '밀정'은 더욱 특별한 작품이겠다.
"영화를 보고 딱 두 마디를 했다. '못생겼어. 망둥어 같아' 하하. 아내가 굉장히 직설적이다. 그래서 좋다. 모니터링 할 때 '여긴 이래서 이상하고 저긴 이래서 별로야'라고 다 얘기해 준다. 연습할 때 '중국어 못한다'고 엄청 뭐라 했는데 네이티브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 않나. 연기에 대한 특별한 지적은 없길래 '아내 기준에 부합했구나' 생각했다. 아내와는 10년 열애하고 결혼 6년 차다."
-부모님도 영화를 보셨나.
"아내와 반응이 비슷했다. '띵띵 불어가지고 왜 그렇게 못생겼니'(웃음)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출여했을 때 엄마한테 '나 나와'라고 말했다가 편집된 영화를 보고 무너진 적이 있다. 정말 딱 1초 나와서 엄마도 심드렁해 하셨는데 이번에 '밀정'을 보시고는 '그래 그렇게 하고 싶으면 연기해 봐'라고 하셨다. 큰 영화에서 이렇게 큰 역할을 맡아 본 적이 처음이니까 인정해 주신 것 같다."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어떤 캐릭터였길래?
"고문하는 종사관이었다. 4박5일 찍었는데 다 날아가고 딱 한 컷 남았다. 있던 대사도 짤렸더라. 근데 그 한 컷을 보고는 친구들이 연락을 해 왔다. 난 나만 알아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영화의 무서움을 그 때 알았다.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든 지켜보고 있다'는 스스로와의 다짐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