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중Dol'은 일간스포츠의 인기 인터뷰 '취중토크'의 젊고 가벼운 스핀오프 버전입니다.
또래 배우들 사이에서 오디션에 나갔다 하면 척척 붙는 일명 '오디션 신'이라 불린다. 신인에게 가장 높은 관문을 술술 통과하니 눈에 띄는 것은 당연지사. 이원근(25)은 그렇게 김기덕 감독의 부름을 받았고 배종옥·전도연·김하늘 등 대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연기의 '연'자도 몰랐던 고등학생 시절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2012년 '해를 품은 달'에서 어린 운 역할을 맡으며 눈도장을 찍은 이원근은 '일말의 순정', '유령', '형영당 일기', '하이드 지킬 나'를 거쳐 '발칙하게 고고'를 통해 주연으로 급부상했다.
교복을 벗자마자 변호사 옷을 챙겨 입게 된 '굿 와이프'는 이원근의 소년미를 떨쳐내기 충분했던 작품. 이젠 브라운관을 넘어 스크린까지 넘보는 이원근의 행보는 무서울 정도로 '직진'이다.
딱 4년 만에 스크린 주역으로 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공식 부름을 받았다. '그물'을 시작으로 '환절기', '여교사', '그대 이름은 장미' 그리고 곧 촬영을 앞둔 '괴물들'까지 차기작만 4편이 넘는다.
"부산 진짜 오랜만이에요!"라며 눈이 휘어져라 웃는 모습도, "진짜 궁금했는데 정말 술 마셔도 돼요? 가짜 술 놓고 하는 줄 알았는데 신기해요"라며 두리번거리는 모습도 여전히 신인의 향기는 남아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조차 괜찮다며 슥슥 손으로 넘겨버리고, 영악하지 않은 솔직한 입담은 모두 이원근의 매력을 대변했다. 직원 영수증까지 챙겨주는 배우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궁금한 것도 많은지 대답만큼 질문도 쏟아진 시간. 꽃길이 창창하게 깔려있는 이원근을 바다 바람이 시원하게 몰아치는 부산의 한 조개구이 집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최대 한 병? 그 이후로는 정신력으로 버텨요.
- 주사는 없어요?
"특별한 주사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주량이 넘어가면 집에 가서 괴로워하고 토하고. 저번에 술을 엄청 마셔야 할 일이 있었는데 술자리엔 잘 앉아 있다가 다음 날 하루를 통째로 날려 버렸어요."
- 부산은 얼마 만인가요.
"11개월 만에 왔어요. '발칙하게 고고'를 함께 했던 지수·재하랑 같이 공연 보러 왔었거든요. 서울은 티켓이 없어서 부산까지 내려왔죠. 좋아하는 가수가 똑같아요."
- 당일치기는 아니었겠네요?
"1박2일 여행이었어요. 제가 애들 데리고 직접 운전해서 왔죠. 나름 형이에요. 지수랑 재하가 24살, 제가 26살이니까. 매니저도 없이 저희끼리 와서 놀았어요."
- 부산 구경도 많이 했어요?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싶었는데 하필 비가 엄청 많이 와서 그냥 숙소에만 있었죠. 공연장 바로 앞세 3성급 호텔? 같은 숙박 시설이 있어서 거기에 방을 잡았어요."
- 얼굴 알아 봤을 것 같아요.
"호텔에서 저희를 알아 보시고는 체크아웃을 늦게 해주시더라구요. 세 명에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어서 좀 애매했거든요.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고. 완전 감사했어요!"
- 부산국제영화제 참석도 처음이겠네요.
"처음이죠. 스케줄이 촉박해서 레드카펫에 못 선 것이 너무 아쉬워요. 그 큰 무대에 언제 또 초대받고 서보겠어요. 저로서는 굉장히 큰 경험이 되고 좋은 기록으로 남았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 올해 '그물'과 '환절기' 두 편으로 초청 받았죠?
"네. '그물'은 세 번 봤고 '환절기'는 아직 못 봤어요. 찍을 때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어서 빨리 보고 싶어요. 마음이 많이 아픈 작품이거든요. 이곳 저곳에서 좋은 얘기는 많이 해주시는데 전 아직 못 봐서 불안하기도 하고."
- 만족하지 못할까봐요?
"어떤 직업이든 누구나 다 똑같을 것 같은데 스스로 만족하는 순간 더 이상 발전은 못하는것 같아요. 수학자, 과학자 분들이 괜히 끊임없이 연구하는게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하구요. 자기만의 기준치와 목표가 있겠지만 '만족'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쓸 수 없는 것 같아요."
- '그물'은 어땠나요.
"당연히 아쉬웠죠. 소속사 대표님은 워낙 기대를 안 하고 계셨던터라 '잘했어. 잘하고 있어'라고 다독여 주셨는데 왜 그런거 있잖아요. 진짜 잘해서가 아니라 어린 아이들 칭찬하는 것처럼 응원해 주는. 더 성장하고 좋은 사람 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 그래도 개봉 후 호평이 쏟아지고 있어요.
"제가 잘했다기 보다는 영화가 좋았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무엇보다 류승범 선배님께서 잘 이끌어가 주셨기 때문에 그 덕을 저도 봤죠. 주인공이 힘이 없으면 주변 인물들도 같이 힘이 없어지니까. 선배님께 감사해요."
- 류승범 씨는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난거죠?
"네. 한 번도 못 뵀어요. 되게 멋진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아요. 성향도 저랑은 정 반대라 '와, 나랑 정말 많이 다르다. 닮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 어떤 면이 그렇게 달라요?
"선배님은 에너지 넘치고 활발하고 자유스러운 반면에 전 갇혀있고 조용한걸 좋아하거든요. 굉장히 멋지고 나이스 하세요. 스태프도 어찌나 잘 챙기시는지 깜짝 놀랐어요."
- 김기덕 감독님은 생각했던 그대로던가요.
"아뇨. 근엄하고 무서울 것 같고 윽박지를 것 같았는데 순한 양 같으세요. 안 믿기시죠. 근데 진짜예요. 배려와 호의가 몸에 배인 분이세요. 감히 제가 지금까지 만났던 감독님들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요."
- 누구에게든 존대말을 쓰시기로도 유명하죠.
"맞아요. 그런 분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흔치 않잖아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존중하는건 생각은 해도 실천하긴 어려운 일이니까. 편해지면 막 대하게 되는데 감독님은 전혀 그러시지 않더라구요. 욕도 들어본 적 없고, 언성이 높아질 것 같은 분위기도 좋게 넘기셨어요."
- 회식도 했나요?
"엄청 자주요. 사비로 몇 백만원씩 쓰셨어요. 장어, 소고기 종류별로 다 사주셨던 것 같아요. 카드만 넘기고 먼저 가실 때도 많았어요. 당신이 계시면 스태프들이 불편해 할 수 있다고. 진짜 멋지죠. 근데 '그물' 촬영장이 조금 더 특별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회식을 한 적도 처음이라고. 엄청 감사했어요."
- 이번에 베니스영화제에도 다녀왔죠.
"그 때 어머니 아버지도 함께 갔거든요. 여행까지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너무 행복했어요. 배우하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