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야구책 한 권이 출판됐다. 야구사적 가치가 있는 책이다. ‘조선야구사(대한미디어 출판)’. 1932년 일본인 오시마 가츠타로가 쓴 최초의 한국 야구 역사책이다. 손환 중앙대 체육학과 교수가 최초 출판 84년 만에 번역했다. 그는 왜 이 책을 번역했을까. 손 교수가 일간스포츠에 그 이유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1932년 12월 28일 자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오시마 가츠타로씨 저(著)의 신서간은 지난 25일에 출간한바 정가는 2원70전, 발행소는 남산정 일정목 18번지 ‘조선야구사’발행소라 하며 내용과 사진, 아울러 조선 최초의 야구사 책으로 값이 있다 한다."
기사대로 ‘조선야구사’는 한국 최초의 야구사 책이다. 일제강점기 야구 활동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하며 부록으로 실은 '한국의 야구 도입' 관련 내용을 알리고 싶었다. 이 부록은 필자가 2003년 발표한 ‘한국의 야구 도입설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정리한 것이다.
필자는 1990년대 일본 쓰쿠바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논문을 준비했다. 사료를 수집하던 중 한국에 야구가 도입된 첫해에 대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전까지 체육사에서는 한국 야구 원년은 1905년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1930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길용의 ‘조선야구사’와 오시마의 저서 ‘조선야구사’에는 1904년으로 돼 있었다. 박사 학위논문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 사료를 보완해 학술지에 발표하기로 마음먹었다.
1999년 귀국한 뒤 연구 결과를 모아 2003년 9월 한국체육학회에 ‘한국의 야구 도입설에 관한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을 계기로 2011년 12월 스포츠동아에 "한국 야구 원년과 최초 경기를 정확한 조사로 수정해야 한다"는 기고를 했다.
그리고 2013년 12월 17일 대한야구협회는 '한국 야구 도입 원년 정정 선포식'을 열었다. 홍윤표 OSEN 대표는 1930년 이길용의 동아일보 연재와 오시마의 ‘조선야구사’, 해방 이후 최초 야구규칙서로 추정되는 최문혁의 ‘야구규칙’ 등 사료를 들어 한국 야구 원년을 1904년으로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1905년으로 잘못 알려진 이유는 1958년 나현성 서울대 교수가 오시마의 ‘조선야구사’를 참조하며 '메이지 37년'을 '서기 1905년'으로 옮기는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이어 이병석 대한야구협회 회장은 "이제 1905년 도입의 오류를 1904년으로 바로잡는다"고 선언했다.
1904년 기원설도 한국에 야구를 처음 소개한 사람이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라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질레트에 대한 연구는 아직 철저하게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이길용과 오시마, 최문혁 등은 어떤 사료를 근거로 1904년이 원년이라고 했는지 설명도 없다.
대한야구협회 행사 6일 뒤인 12월 23일 필자는 야구 도입 연도에 대해 스포츠서울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이길용과 오시마가 무엇을 근거로 1904년 도입을 주장하는지 언급이 없다. 1905년 기원설은 1904년으로 수정돼야 한다. 하지만 이를 명백히 밝히기 위해서는 질레트의 사료를 수집해야 하는데, 아직 사료가 눈에 띄지 않아 중단된 상태"라고 답변했다. 지금도 필자는 질레트에 대한 사료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4년 초 한국의 야구 도입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심도 있는 논의를 하고자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뤄지지 못했다.
‘조선야구사’는 1932년 12월 한국에서 오시마가 지은 책이다. 저자가 일본인이지만, 현재 한국에서 야구라는 단일 운동경기 종목의 역사를 다룬 가장 오래된 책이다. 오시마는 머리말에서 여러 선배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으며, 그중 이원용과 이길용의 이름을 들고 있다. 일부에서는 저자가 일본인이며, 일본인 중심의 야구 활동을 다루고 있어 당시 한국 야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그러나 실제 이 책에는 한국의 야구 도입, 구한말 재일한국인유학생의 모국 야구원정경기, 한국인 팀인 YMCA, 오성구락부, 숭실대학, 조선공론, 한용야구단의 조직과 활동 등 초창기 한국인들의 야구 활동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야구 경기는 물론이고 정구, 승마 등 활동, 1919년 2월 일본인이 설립한 조선체육협회의 회칙과 활동, 선수와 심판, 관중이 지켜야 할 윤리 의식과 당시의 운동장 사정, 선수 프로필, 응원가 등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야구사, 나아가 한국근대스포츠사를 파악하는 데 매우 의미 있는 사료다. 특히 한국근대스포츠의 암흑기인 일제 무단통치기(1910~1919)의 스포츠 활동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 또한 매우 크다.
스포츠 역사를 배우는 중요성에 대해 답하는 것은 어렵다. "왜 스포츠를 합니까?"라고 물으면 많은 이들이 "건강을 위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스포츠 역사라면 오히려 "배울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되묻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 스포츠는 언제 시작됐을까' 정도의 관심은 있어도 연구하고 배우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평소 스포츠의 역사를 접하고 흥미를 가질 기회 자체가 적다.
그럼 스포츠사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는 스포츠 문화의 현재를 파악하기 위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학문 분야의 하나다. 또 스포츠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역사적 측면에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필자는 스포츠사는 '스포츠의 뿌리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츠의 뿌리를 찾는 일은 스포츠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스포츠는 과연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고 시작되었나, 많은 이들이 애용하는 스포츠 용품은 언제, 누가 만들었나 등의 물음은 역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대학에서 세계체육사를 공부하는 것은 스포츠의 역사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한국체육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스포츠의 역사를 통해 한국을 이해하는 데 있다.
최근 한국 스포츠의 뿌리를 찾기 위한 여러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재청의 근대문화유산 체육 분야 목록화 조사(2011년), 대한체육회의 스포츠영웅 선정(2011년~현재),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스포츠발전 공헌원로 구술채록(2015년~현재)과 국립체육박물관 건립(2019년 말) 등을 들 수 있다.
역사는 스포츠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분야다. 온고지신, 스포츠사란 스포츠의 옛것을 익힘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