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북촌에 위치한 주한 베트남대사관. 평소였다면 고요했을 대사관은 아침 일찍부터 수십 여명에 달하는 한국과 베트남 취재진 덕에 북새통을 이뤘다. 밀려드는 취재진을 지켜보던 한 대사관 관계자는 "지금까지 나눠 드린 방문증만 80여 장이다. 월요일부터 많은 분들이 찾으셨다"고 귀띔했다.
도대체 무슨 행사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까. 이날 대사관에서는 '베트남 1호 K리거' 르엉 쑤언 쯔엉(22)의 강원 FC 입단식이 열렸다. 보통의 입단식은 구단 사무실이나 호텔 등지에서 유니폼을 교환하고 향후 각오를 다지는 선에서 마무리되곤 한다. 그러나 쯔엉은 달랐다. 베트남대사관이라는 이색적이고 공적인 자리에서 성대하게 열렸고, 대사관측과 강원 구단의 상호 선물교환식이 있었다. 입단식 뒤에는 취재진의 질의응답 시간까지 마련됐다.
분위기도 사뭇 특별했다. 물론 젊은 선수의 새 출발을 알리는 자리답게 시종 화기애애했다. 동시에 이 자리에 참석한 쯔엉과 팜후이찌 베트남 대사, 그리고 조태룡(56) 강원 대표의 표정에는 비장감이 담겨 있었다. 쯔엉이라는 선수가 베트남은 비롯해 강원 구단, 그리고 K리그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 때문이었다.
K리그 생활 2년 차 접어드는 쯔엉은 강원과 K리그 전체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선수다. 2017시즌 클래식(1부리그)에 입성한 강원은 정조국(33)과 이근호(31) 등 스타플레이어와 함께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쯔엉을 영입했다. "잠재력을 가진 선수"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강원과 K리그의 글로벌화를 열고 꽉 막혔던 시장 활로를 틔워 줄 선수로 평가했다.
조태룡 대표는 쯔엉을 통해 베트남에 구단을 알리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이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조 대표는 "앞산을 넘어야 뒷산을 넘을 수 있다. 먼저 쯔엉의 성적을 내야 마케팅 부분도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연계 플레이에 재능이 있는 쯔엉을 적극적으로 기용해 성공적인 K리거로 키우겠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다.
팜 후이찌 대사는 쯔엉의 의미를 더 크게 보고 있었다. 후이찌 대사는 "쯔엉이 인천과 강원 구단에서 뛰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과거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진출한) 박지성(35)이나 손흥민(25·토트넘)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며 "앞으로 쯔엉을 통해 베트남 국민이 한국 축구를 사랑하고 교류의 폭도 넓힐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쯔엉이 베트남을 대표하는 K리거로서 교두보 역할과 동시에 양국의 우정까지 돈독하게 다질 수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쯔엉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까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실력보다는 '돈벌이용'이라는 이미지가 짙은 탓이다.
그러나 수도권 구단의 한 고위 관계자는 "솔직히 쯔엉이 성공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갈수록 침체한 K리그도 숨통을 틔울 수 있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쯔엉은 "나는 한 번도 내 장점을 말한 적이 없었다. 경기장에서 보여드리겠다"고 굳게 말했다. 그의 건승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