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5일 낮 12시(한국시간) 우즈베키스탄에는 조용한 개혁이 시작됐다. 이날 정오경께 우즈베키스탄의 은행, 호텔 등 공식 환전소에 표시된 1달러당 숨(sum·우즈베키스탄 화폐단위)의 환율이 종전 4200숨에서 8000숨으로 급격하게 조정됐다. 소리 없이 바뀐 환율에 어디든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그 이면에선 이미 소리 없는 경제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기자는 축구 취재 차 타슈켄트에 두 번째로 방문했다. 첫 번째 방문은 5년 전 최강희(57) 감독 당시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때였고, 그 때도 숨 환전으로 골머리를 앓은 경험이 있다. 5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지만 여전히 환율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양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단두대 매치’가 열리는 바로 이날, 개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또 다른 ’역사의 현장’에 서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다.
이번 환율 조정은 오랫동안 우즈베키스탄 정부를 괴롭혀 온 고시 환율과 시장 환율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다. 오랜 기간 독재정권을 거친 우즈베키스탄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폐쇄적인 경향이 남아있는 나라다. 특히 경제적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으며 이중 삼중 환전이 꾸준히 문제로 제기돼 왔다.
우즈베키스탄 화폐 숨(CYM). [사진=연합뉴스 제공] 암시장은 물론 택시나 호텔에서도 고시 환율과 시장 환율의 차이를 노린 불법 환전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상점에서 만난 한 현지인은 "고시 환율(1달러 4200숨)과 암시장 환율간 차이가 적게는 1.5배에서 많게는 2배 이상까지 벌어지는 상황도 있다"며 "제 값 주고 환전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을 기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우즈베키스탄 중앙은행이 달러당 기준 환율을 전날 기준 1달러당 4200숨에서 8200숨으로 고시하면서 불법 환전의 이점이 사라졌다. 로이터 통신은 "규제 당국은 광범위한 외환 자유화 개혁을 위해 당분간 인위적으로 환율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제적인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자 기준 환율은 당분간 기존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숨화의 평가절하는 최근 들어 우즈베키스탄의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정부가 외환 자유화 정책을 실시할 것이란 얘기는 이미 공공연하게 떠돌았고, 그 시기가 언제가 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지난 3일 샤브캇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외환정책 자유화 우선 조치에 서명하면서 개혁의 신호탄을 쐈다.
자유유럽방송(Radio Free Europe)은 지난 3일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외환 자유화 정책을 5일부터 시작할 예정"이라고 보도하며 "이로 인해 암시장 상인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조치로 우즈베키스탄 기업들은 수입과 임금·서비스, 대출 상환, 여행경비 지급 등 국제거래를 위해 외화를 구매할 수 있게 됐고, 개인도 외화를 환전 창구에서 자유로이 거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