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지난 25일에 2018년 보류선수 명단에서 더스틴 니퍼트(37)를 제외했다. "니퍼트와 재계약하겠다"는 의사를 KBO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두산이 니퍼트의 보류권을 포기한 것은 "다른 외국인 투수를 찾겠다"는 뜻은 아니다. 몸값을 낮출 필요가 있어서다. 니퍼트는 올해 역대 외국인 선수 최고액인 210만 달러(약 25억원)를 받았다. 두산이 니퍼트에게 재계약 의사를 통지했다면, 내년 시즌 최소 157만5000달러(약 17억1000만원) 이상의 몸값을 보장해야 한다.
KBO 규약 '외국인 선수 계약서' 제10장 '독점 교섭기간: 보류권' 조항 때문이다. '구단은 계약 연도 11월 25일까지 재계약 의사를 서면으로 선수와 그의 지정 대리인에게 통지해야 하며 선수의 해당 연도 계약 보너스와 연봉을 합친 금액의 최소 75% 이상을 지급하겠다는 서면상 제의를 포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두산은 니퍼트가 국내의 다른 구단으로 이적 가능성을 열어 준 대신 157만5000달러보다 적은 금액에 사인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셈이다.
외국인 선수 계약서에는 선수와 구단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수많은 세부 항목이 포함된다. 활동 기간은 국내 선수들(2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과 같다. 구단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 기간 동안 세계 어느 구단에서든 야구 활동이 금지된다. 또 이 기간 동안에는 구단이 서면으로 허가해야 한국을 떠날 수 있다. 구단의 동의 없이 외국으로 나갔다면, 계약 해지 여부와 별개로 원래 계약 기간 동안 해외 다른 구단에서 뛸 수 없다.
모든 계약은 선수가 취업 비자를 취득하고 KBO 총재가 입단을 승인한다는 전제하에 유효하다. 입단이 확정된 선수는 구단이 지정한 의사에게 완벽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다만 구단이 계약 시점 7일 이내에 메디컬 테스트를 요구하지 않으면, 추후에 의학적인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계약을 무효화할 권리가 없다.
선수가 구단이 지정하는 날까지 팀에 합류하지 않으면, 미뤄진 날짜 1일당 벌금 500달러를 내고 연봉 30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지 못한다는 조항도 있다. 계약금은 KBO 총재 승인일부터 30일 이내에 전액 입금돼야 하고, 연봉은 활동 기간인 2월부터 11월까지 10개월로 균등 분할해 지급된다. 외국인 선수의 '월급날'은 매월 20일. 총재 승인 이후에는 최소 2개월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
외국인 선수가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 등록 말소 사유에 따라 다른 조항이 적용된다. 성적이 좋지 않아 2군에 간 선수는 말소 일수만큼 매일 연봉 300분의 1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삭감 받게 된다. 국내 선수들과 같은 규정이다. 타자는 정규 시즌 개막전을 기준으로 하고, 투수는 개막전 포함 7경기 시점 이후부터 엔트리 말소 일수가 계산된다.
공식 경기와 훈련, 팀 원정 도중 발생한 부상·질병·사고로 엔트리가 말소됐을 때는 연봉이 정상적으로 지급된다. 다만 치료와 재활을 마치고 퓨처스리그 선수로 등록된 뒤에도 경기력 저하로 1군에 올라가지 못한다면 성적 부진과 같은 조건으로 감액된다. 이 경우에 말소일 계산은 퓨처스리그 엔트리 등록 15일 이후부터 시작된다. KBO 징계나 개인적인 사고로 참가 활동 정지 기간이 30일을 넘는 경우에도 같은 규정에 따라 연봉이 깎인다.
복지 혜택도 확실하게 명시돼 있다. 구단은 기본적으로 선수와 그 직계가족(부인, 미성년 자녀, 미성년 부양가족)에게 주택을 제공한다. 또 선수와 직계가족이 한국과 본국을 오갈 수 있는 왕복 이코노미석 항공권 한 장씩을 연 1회 제공한다. 영수증을 제출하면 이사 비용도 준다. 2000달러 한도 내에서 선수와 직계가족에게 선적 요금과 추가 화물 요금을 포함한 모든 이주 비용을 지급한다. 이외에도 훈련과 경기를 포함한 팀 관련 활동에 동행할 통역 한 명을 제공하고, 팀 활동으로 인한 부상과 질병의 의료비도 구단이 부담한다. 한국에서 뛰는 동안에는 본인과 배우자, 부양가족까지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선수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도 많다. KBO 외국인 선수 계약서에는 ▲ 육체적 상태(기술과 능력) ▲ 의학적 상태에 대한 검사 ▲ 야구 진흥 활동 ▲ 성명 및 초상 사용권 ▲ 기타 활동이 선수의 의무로 규정돼 있다. 특히 '기타 활동' 항목에선 자동차경주, 모터사이클, 항공기 조종, 열기구, 스카이다이빙, 패러글라이딩, 스키, 제트스키, 유도, 번지점프, 기타 TV나 영화에서의 운동 경연을 포함해 야구선수로서의 능력과 기술을 훼손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 활동'을 모두 금지하고 있다. KBO 정규 시즌과 포스트시즌 경기, 올스타전을 제외한 모든 '운동'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제11장에는 '팀 비밀 공개 금지' 조항도 있다. '선수는 계약서에 쓰인 세부 조건을 제3자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 선수 활동을 통해 알게 된 팀 기밀 정보를 계약 기간 동안과 그 이후에도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선수가 계약 기간 동안 구단에 받은 보고서, 그림, 차트, 플레이북, 사인, 필름 등은 계약 해지 이후 모두 구단 재산으로 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