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브라질의 눈물을 기억한다." 2018 러시아월드컵 조 추첨 결과를 받아든 한국 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25·토트넘)이 남긴 소감이다. 3년 전 여름, 지구 반대편 브라질까지 날아가 월드컵 조별리그 무대에 나섰던 손흥민은 당시 1, 2차전 완패에 이어 마지막 3차전 벨기에와 경기서 탈락이 확정되자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 냈다. 2차전 알제리전 패배 뒤에도 눈물을 보였던 손흥민은 벨기에전이 끝난 이후에는 아예 울보처럼 엉엉 울었다. 세상 서럽게 우는 손흥민의 모습은 TV를 통해 생중계됐고 축구팬들에게 '2014 브라질월드컵이 끝났다'는 실감을 안겨 줬다. 눈물을 닦은 손흥민은 "이번 대회에서 흘린 눈물을 다음 대회에서 반복하지 않기 위해 4년간 제대로 준비하겠다. 다음 대회에서는 웃을 것"이라며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만회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그때 흘린 눈물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18 러시아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유독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울리 슈틸리케(63) 전 감독 체제에서 신태용(47) 감독 체제로 바뀌면서 경기력 부진으로 인해 진통을 겪었다. 팀을 제대로 꾸리기도 전에 '히딩크 논란'에 부딪혔다. 11월 A매치 2연전에서 콜롬비아-세르비아를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던 것이 '신태용호' 출범 이후 가장 좋았던 순간이다.
조 추첨에서도 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 그리고 이탈리아를 잡고 본선 무대에 오른 스웨덴 등 상대하기 버거운 팀들과 한 조에 묶였다. 전력상 본선 진출 32개국 중 최약체로 분류되는 대한민국이다. 이 상황에서 하나같이 까다로운 팀들과 한 조가 됐다.
그래도 손흥민은 3년 전 눈물을 흘리며 남겼던 자신의 다짐을 지켜 나갈 생각이다. "어느 팀이든 우리보다 강팀이고 어려운 것은 잘 알고 있다"며 담담하게 소감을 전한 손흥민은 "공은 둥글다. 우리가 부족한 부분을 얼마나 잘 준비하냐에 따라 2014년 브라질에서 흘린 눈물이 웃음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브라질월드컵의 아픔을 웃음으로 바꾸기 위해선 손흥민의 활약이 중요하다. F조에서 한국을 상대하는 모든 나라가 '경계 대상 1순위'로 손흥민을 꼽을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상대의 집중 견제를 뚫고 얼마나 활약할 수 있냐가 조별리그 돌파의 열쇠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손흥민이 틀어막히면 한국의 16강 진출도 힘들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자신의 어깨에 걸려 있는 막중한 책임을 알고 있다는 듯, 손흥민은 조 추첨 다음 날 보란 듯이 시즌 5호 골을 터뜨리며 3년 전과 다른 '에이스'의 품격을 과시했다. 손흥민은 3일 영국 런던 비커리지 로드에서 열린 2017~2018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15라운드 왓포드와 원정경기에서 동점골을 터뜨리며 토트넘을 패배에서 구해 냈다. 손흥민은 이날 토트넘이 0-1로 끌려 가던 전반 25분 크리스티안 에릭센(25)의 크로스를 받아 동점골로 연결했다. 소속팀 토트넘은 물론, 2018 러시아월드컵 '최약체'로 분류된 한국 축구대표팀의 '자존심'을 지킨 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