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은 2018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 단식에서 한국 최초 4강에 오르는 신화를 썼다. 16강에서 세계 최강 중 하나로 평가 받는 노박 조코비치(31·세르비아)를 3-0으로 무너뜨리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4강까지 오른 정현은 '황제' 로저 페더러(37·스위스)와 격돌했다. 아쉽게도 발바닥 부상으로 시합을 끝까지 하지 못한 채 기권하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테니스 약소국이었던 한국 위상을 높이고, 감동과 환희를 선사한 아름다운 도전에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에 버금가는 감동이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이토록 뜨거운 정현이 JTBC3 FOX Sports의 2018년 신규 프로그램 <사.담.기> 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주오픈이 끝난 뒤 처음 하는 인터뷰다. <사.담.기> 는 사진에 담긴 숨은 이야기의 약자다. 스포츠 스타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인생사진'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장성규 아나운서가 MC, 조수애 아나운서가 패널로 출연한다. 정현이 출연한 <사.담.기> 오는 5일 오후 11시에 방송된다.
정현은 먼저 모든 팬들이 궁금해 하는 자신의 몸상태를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오자마자 병원에 가서 발바닥부터 몸전체를 체크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며 "이번 주까지 휴식을 취하고 다음 주부터 정상훈련을 할 수 있다. 10일 정도에 미국으로 가 투어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현은 자신으로 인해 생긴 한국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고 있을까. 그는 "호주에서는 담담했다. 그런데 인천공항에 나왔을 때 너무나 많은 분들이 와서 깜짝 놀랐다. 코트에 들어선 느낌이었다"며 "하지만 이후에는 병원에 다니느라 밖에 돌아다니지 못해 어느 정도 붐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2002 월드컵 4강 정도라고 하는데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정현은 "호주오픈은 이번 주까지만 (기쁨에) 빠져 있을 것이다. 다음 주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호주오픈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결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현은 <사.담.기> 의 주제에 맞게 자신의 인생사진을 들고 나왔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두 장의 사진이 있다. 한 장은 조코비치, 또 다른 한 장은 페더러였다. 지금의 정현을 있게 만들어준 세계 테니스 슈퍼스타, 정현의 '롤모델'이다.
조코비치의 사진은 2018 호주오픈의 모습이 아니다. 2년 전 2016 호주오픈에서 조코비치를 처음 만나 0-3 완패를 당했던 장면이 담겼다. 정현은 "2년 전 조코비치는 세계랭킹 1위였다. 큰 경기장에서 시합도 처음이었다. 경기는 졌지만 좋은 경험이었다"며 2년 전을 떠올렸다.
2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정현은 "이번에는 조금 다른 상황에서 조코비치와 시합을 했다. 조코비치는 부상에서 돌아온 컴백 무대였고, 나는 흐름이 올라온 상태였다"며 "다시 한 번 같은 코트에서 시합한 것이 영광이었다. 2년 전에 한 번 해봤으니 이번에는 나에게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좋은 쪽으로 생각을 했다. 이겨서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감격의 순간을 돌아봤다.
조코비치는 패한 뒤에 오히려 정현을 극찬한 바 있다. 이에 정현은 "조코비치가 나를 높게 평가해줘 고마웠다. 그런 자세가 조코비치를 그 자리까지 올려놓은 것 같다.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페더러의 사진은 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2006년 열 살 정현이 페더러와 만났던 사진이다. 초등학생 정현이 서울에서 열린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32·스페인)의 이벤트 경기에 볼을 나르는 '볼키즈'로 참여한 것이다. 페더러와 첫 만남이었다. 단체사진을 보면 정현은 맨 아래 왼쪽에 모자를 쓴 채로 앉아 있다.
정현은 "초등학교 때 페더러와 나달의 이벤트 경기에 볼보이로 3시간을 서 있으면서 좋은 구경을 했다"며 "페더러는 모든 테니스 선수들의 우상이자 롤모델이다. 나는 당시 페더러를 응원했다. 이번에 만났는데 나를 몰라봤을 것이다. 워낙 어리고 구석에 있었다"고 웃었다.
12년 뒤 '황제와 볼키즈'는 호주오픈 4강 무대에서 다시 만났다. 정현은 "페더러와 경기를 할 때면 모든 팬들이 페더러 편에 서 있다고 생각을 하면 된다. 나 홀로 싸움이다. 부담감이 있다.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다"며 "시합에 들어가기 전 페더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결과가 아쉬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부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정현은 "내가 부상이 없었다고 가정을 해도 100%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 재미있는 경기가 나오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페더러를 만날 기회는 분명히 있다. 정현 역시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다.
정현은 "페더러는 나이가 많다. 페더러가 은퇴하기 전에 몇 번 더 만나 배우고 싶다"며 "다시 만난다면 기권승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더 좋은 결과가 내 쪽으로 올 것 같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코트에서 관중석을 향해 했던 '큰 절'의 의문도 풀렸다. 정현은 "당시 관중석에 부모님도 계서서 한 것이지만, 사실은 내 조국 대한민국에 건넨 인사다. 이 기쁨을 어떻게 감사드릴까 고민하다가 그런 제스처를 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현의 마지막 '꿈의 사진'은 아직 찍지 못했다. 정현과 함께 한국 테니스 그리고 팬들이 모두 기다리는 사진이다.
"더 잘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은퇴하기 전까지 모든 국민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그랜드슬램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