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제작하고 투자받을 때, 배우 강동원(37)의 이름 석자는 일종의 치트키다. 그가 선택한 작품은 모두가 달려들어 제작과 투자에 나선다. 이쯤되니 강동원은 주연배우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됐다. 7년 전 동명의 일본 소설의 리메이크 제안부터 출연에 이르기까지 강동원의 손을 탄 '골든슬럼버(노동석 감독)'가 바로 그 경우다.
'골든슬럼버'는 강동원의, 강동원에 의한, 강동원을 위한 영화다. 하루 아침에 대선 후보 암살범으로 지목된 택배 기사 건우의 도주극을 그린 작품에서 건우를 연기했다. 사람좋은 미소와 억울한 표정, 어설픈 도주가 건우라는 인물을 설명해주는 키워드. "손해 좀 보고 살면 어때요"라는 대사에 인물의 성격이 잘 드러나기도 한다.
강동원을 원하는 숱한 작품 중 왜 '골든슬럼버'였을까. 그는 마냥 착하기만 한 건우가 거대한 권력에 부딪히지만 친구들과 함께 역경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길 바랐다. 희망적 메시지를 전하며 진짜 세상이 행복한 세상에 조금 더 다가가길 바랐다. 친구들과 이 영화를 보며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되찾길 바랐다. 이는 강동원에게 지금 가장 큰 고민이자 사명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세상에 살고 싶다"며 히어로 같은 소망을 밝힌 그는 "너무 행복전도사 같은가"라며 웃어보였다.
-배우로서의 고민이 있나. "20대에는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한 작품이 안되면 비로 아웃될 수도 있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진짜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 생각들이 쌓여서 지금 안정된 면도 있다. 배우 생활을 하며 이게 내 직장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다. 한 작품을 하고 나면 그냥 끝이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스태프들도 다 아는 사람이더라. 조합만 달리지는 거다. 직장은 아니니까 안정적이 되니까 이제부터 내가 가진 직업의 의미가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려고 일을 하는 건데, 나만 행복하다고 행복한 건 아니지 않나. 주변이 안 행복한데. '조금 더 행복한 사회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배우가 가진 직업이라는 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도 있고,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 그게 배우의 직업이고 사명이 아닌가한다."
-신인감독과 낯선 장르 혹은 낯선 이야기로 자주 호흡을 맞춘다. "한국 영화가 장르적으로 국한되는 것이 실다. 새로운 이야기도 하고 싶다. 관객 분들도 그런 것에 대한 갈증이 있을 거다. 다만,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당연히 돈이 많이 드니까 안정적인 걸 하고 싶어 한다. 나는 대중적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이 있으니까. 내 이름이면 어느 정도 자본을 끌고 올 수 있는 위치가 됐다. 맨날 하던 이야기만 하기는 싫으니 자주 그러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 같다."
-과거와 지금 강동원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품 속 주제가 달라진 것 같다. "딱히 변한 건 아니다. 내 나이에 맞는 고민이 있는 거다. 영화란 것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많은 고민을 하고 쌓이면서 그런 이야기(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이 갔다. 20대에 담을 수 있는 사회적 이슈라고 해봤자 청소년의 방황 정도 아닐까?(웃음) 자연스러운 변화인 것 같다."
-'1987'에서 이한열 열사 역할을 통해 대학생 역할도 소화했다. "처음엔 나도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당시 사진을 찾아보면 저보다 나이들어 보이는 분들도 있더라.(웃음)"
-'1987'에서는 처음부터 숨겨진 역할이었나. "캐스팅 과정을 생각하면 그럴 의도는 없었다. 이한열 열사가 워낙 큰 이름이다보니, 어쨌든 유명한 배우가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임팩트 있는 사람이 할 역할이라고 생각들 했던 거다. 분량이 크지도 않지만 작지도 않고, 임팩트 있는 역할이었다. 감독님이 제가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대학생 역할인데 내가 갑자기 등장하면 흐름이 끊기지 않겠냐고 반문했지만, 다른 배우들이 흐름이 끊기지 않을 것 같다고 해줬다. 그것보다는 많은 사람이 보는게 중요하다고 말해주더라."
-사람 사는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행복한 세상에 살고 싶다. 지금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제일 좋다. 작품을 같이 만든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고. 이렇게 말하니 내가 행복전도사 같다.(웃음) '골든슬럼버' 속 캐릭터와 비슷한 지점도 있다. '좀 손해보고 살면 어때요'란 대사가 있다. 정말 좀 손해보고 살면 어떤가."
-친구에게 사기도 당했다던데. "그 친구가 사기를 당했고,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같이 사기에 끌어들인 거다. 다같이 사기를 당한 거지. 나도 그 중 하나다. 친구 믿고 돈 빌려준 거다. 뭘 어떻게 할 생각은 없다. 그 친구들과는 지금도 같이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