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 '사이비' 등 블랙코미디 가득한 사회 고발 애니메이션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한 한 감독의 첫 실사영화는 '좀비'라는 신 소재로 한국 영화계에 길이 남을 신드롬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2016년. 영화 '부산행'으로 '1000만 감독', '스타감독 탄생'이라는 평생의 꼬리표와 국내외 호평을 한 몸에 받은 연상호 감독의 등장은 분명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본인은 체감하지 못했다지만 '부산행' 성공 이유의 8할이 연상호 감독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배우들의 연기보다 빛난 소재, 그리고 연출력이었다. 흥행에 작품성, 감독으로서 능력까지 인정받은 연상호 감독은 제37회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염력' 촬영에 한창 매진해야 했던 시기라 부득이하게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연상호 감독을 1년만에 다시 만났다. "진짜 바쁘게 살았는데. 이제 반 강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요?" 술을 부르는 멘트가 아닐 수 없다.
부산행' 열기가 잠잠해지기 전 들려온 그의 차기작 소식은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충분했다. '좀비에 이어 이번엔 초능력이다' 연상호 감독의 이름 석자만으로 충분한 마케팅이었다. 하지만 감독의 만족도와 관객들의 평가가 늘 일치할 수는 없다. 연상호 감독의 두번째 실사영화 '염력'은 누적관객수 100만 명을 넘기지 못하며 사실상 흥행에 참패했다. 매일 뚝뚝 떨어지는 스코어를 지켜보며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던 연상호 감독의 고충도 이만저만은 아니었다.
숙제와 고민이 남았을 뿐 후회와 아쉬움은 없다. 한 편의 영화가 관객들과 소통하지 못했다고 해서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이 뚝 멈추는 것도 아니다. 배우들이 보내는 신뢰와 믿음도 여전하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뒤로 돌아가기는 더 힘드니까요. 연상호라는 사람이 이 산업 내에서 갖고 있는 역할을 최대한 활용해야죠. 제 의지와 다른 방향이라 하더라도요. 그 고민이 가장 커요."
일에 파묻혀 숨가프게 달리기만 했던 연상호 감독은 당분간 여유를 즐길 생각이다. 촬영을 할 때도 외박은 지양하는 스타일이지만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가정적인 남편은 아니에요. 들으면 아내가 화낼걸요?"라며 호탕하게 웃은 연상호 감독은 "마음을 조금 더 많이 열어 두려고요. 배우도 그렇지만 감독은 더 더욱 작품으로 말해야 하니까. 제가 또 어떤 신박한 일을 저지를지 모르죠. 기다려 주세요." '소주파' 연상호 감독이지만 이날 만큼은 쭉쭉 들이킨 맥주 한잔도 아쉬운 시간이었다.
2편에 이어...
-'부산행·염력' 모두 부성애를 다뤘죠. 스스로는 어떤 아빠라 생각 하나요. "많이 모자란 아빠죠. 잘 해보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일이 많은게 문제예요.(웃음) 영화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감독이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것이 현장에는 폐가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고요. 다 챙기고 싶은데 아쉬움은 남죠."
-집에 못 들어가는 경우도 많지 않나요. "거의 없어요. 촬영할 때가 아니면 꼬박꼬박 집에 들어가요. 그건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염력'을 찍으면서도 최대한 매일 집으로 퇴근하려 했고요. 춘천 로케이션을 진행할 때도 끝나면 집에 갔다가 다시 현장에 가곤 했으니까요. 외박을 잘 허락해 주지 않거든요.(웃음)"
-가정적인 남편이네요. "가정적인… 우리 와이프가 들으면 화낼걸요? 가정적인 척 하고 다닌다고. 하하. 7년동안 영화를 우선적으로 생각했으니까 이제는 진짜 가족을 좀 더 챙기려고요."
-일을 하면서 가장 자극 받을 땐 언제인가요. "아무래도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죠. '와, 저건 정말 재미있다' 싶을 때. 최근에는 작품을 많이 못 봤는데 드라마 '파고'를 보면서 감동 받았어요. 나온지 좀 된 작품인데 제가 늦게 봤죠. 조엘 코엔 감독의 '파고'라는 영화를 콘셉트로 만든 드라마예요. 시즌1을 봤는데 '최고'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시즌1만 재미있다는게 함정이지만.(웃음)"
-가장 예민해 지는 순간은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을 때?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죠. 투자를 한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출연을 한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알 수 없을 때요. 차라리 '하겠다, 안 하겠다' 확실한 답변을 주면 편한데 '하긴 할거고 했으면 좋겠는데 좀 고쳤으면 좋겠고'라는 피드백이 오면 제일 민감해져요. 다 정해지면 그 안에서 조율하는건 어렵지 않죠."
-어떻게 에너지를 얻나요. "전 막 에너지를 얻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늘 비슷해요. 감정 기복이 크지 않죠., 항상 피곤하고 항상 지쳐있고.(웃음) 잘 되든 망하든 똑같다고 해야 할까요? '부산행' 때도 '와아아아' 하지는 않았어요."
-차기작은 미정인가요. "이번 결과로 인해 주변에 있는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어떤 것을 할지, 어떤 것을 하는 것이 나을지."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있지 않은 작품에도 관심 있나요. "아주 장르적인 영화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염력'이라는 하는 영화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음 영화를 할 때는 여러가지로 고민이 되겠죠.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차기작으로 애니메이션이 될 가능성은 없나요. "희박하죠. '할 수 있을까?' 싶어요.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지금 뒤로 돌아가는건 힘들 것 같아요. '부산행'과 '염력'이라는 영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더 그렇죠. 다음 행보는 지금까지 안 가 본 방향으로 확장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 의지와 상관 없이요. 연상호라는 사람이 이 산업 내에서 갖고 있는 역할이 있잖아요. 저도 제 의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의지 이상으로 시스템 내에서 포지션이 있더라고요."
-제작은 유효하고요. "제작은 쭉 관여 할 것 같아요.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웹툰도 준비하고 있고요. 회사에 애니메이션 팀과 웹툰 팀이 따로 있어요. 성과가 날지는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도전해야죠. 애니메이션 보다는 웹툰 발전 가능성이 높죠. 애니메이션은 영화와 시장을 나눠 쓰는데 웹툰은 웹툰만의 시장이 어마어마해요. 물건을 만들어도 시장이 있어야 내다 파니까요."
-완성된 각본을 연출만 할 생각은요. "완전 다 열려 있어요. 제가 생각보다 각본을 많이 받는 편이 아니에요. 최근에 흥행에 성공한 한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30개인가 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지금까지 받은 시나리오 다 합쳐도 5개도 안 돼요. 5개가 뭐야, 훨씬 못 미쳐요. 한 세 개 되려나? 남의 글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받고 싶네요."
-해외가 사랑하는 감독이에요. 해외진출 계획도 있나요. "해외 쪽은 여러 제안을 받기는 했는데 딱 마음에 드는 기획이 없었어요. 가볍게 생각은 하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좋은 소식 있으면 자랑스럽게 공개할게요."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oins.com 사진=박세완 기자 영상=이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