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흐르면서 트렌드가 바뀐다. 야구도 예외는 아니다.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 최근 가장 두드러진 트렌드 중 하나는 높아진 불펜 의존도다. 2017시즌 불펜이 소화한 이닝은 전체 이닝의 32.6%인 1만6469⅔이닝이다. 12년 전인 2005년엔 1만4097이닝으로 약 2372이닝이 적었다. 지난해 리그 최다 이닝 투수는 크리스 세일(보스턴 214⅓이닝). 그런데 2005년엔 ‘2017년 세일’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한 투수가 무려 27명이나 있었다. 그만큼 최근 추세는 불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과연 올해 최강 불펜은 어느 팀일까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전문가들이 뽑은 불펜 5위는 보스턴이다. 메이저리그 3대 마무리 투수로 꼽히는 크레이그 킴브럴이 뒷문을 맡는다. 2016년 평균자책점이 3.40으로 다소 높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은 케이스였다. 당시 수비무관평균자책점(FIP)은 2.92였다. 지난해 반등에 성공했고, 9이닝당 탈삼진 16.4개를 기록했다. 타자 254명을 상대해 절반에 가까운 126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반면 9이닝당 피안타는 4.3개에 불과했다. 킴브럴의 뒤를 지난해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한 조 켈리와 부상에서 복귀한 카슨 스미스가 책임진다. 어깨 부상으로 2017시즌을 건너 뛴 타일러 손버그에 맷 반스·히스 헴브리·브랜든 워크맨까지 버티고 있다. 선수층이 상당히 두껍다.
콜로라도와 3년 556억 계약 웨이드 데이비스/연합뉴스
4위는 콜로라도다. 이번 오프시즌 동안 1억 달러가 넘는 투자를 해 마무리 투수 웨이드 데이비스(3년·총액 5200만 달러)와 브라이언 쇼(3년·2700만 달러) 등을 영입했다. 기존에 있던 제이크 맥기와 함께 완벽에 가까운 삼각편대를 완성했다. 마무리 투수 경험이 있는 아담 오타비노, 왼손 계투 듀오 크리스 러신과 마이크 던이 뒤를 탄탄하게 받친다. 평균 패스트볼이 97마일에 육박하는 스콧 오버그의 성장도 예상돼 탄탄한 불펜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3위는 지난해 월드시리즈 준우승팀인 LA 다저스다. 앞서 소개된 킴브럴과 함께 3대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인 켄리 잰슨을 보유했다. 2017시즌 잰슨은 탈삼진 109개를 기록하는 동안 볼넷을 7개만 허용했다. 삼진과 볼넷 비율이 무려 15.57에 달한다. 이 지표를 앞섰던 역대 마무리 투수는 1990년 데니스 에커슬리(당시 오클랜드 18.25)뿐이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잰슨에게 의존하는 건 그만큼 위력적이라는 방증이다.
감독의 스타일상 긴 이닝을 소화해 줄 셋업맨이 여럿 필요한데 로스 스트리플링, 브룩 스튜어트 등이 후보군이다. 조시 필즈와 페드로 바에즈는 훌륭한 불펜 투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지난 시즌 중 트레이드로 영입된 토니 싱그라니는 왼손 필승조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선발에서 불펜으로 전환되며 구속도 더 빨라지고, 타자를 압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위는 클리블랜드다. 필승조 브라이언 쇼가 팀을 떠났지만, 원투펀치인 앤드루 밀러와 코디 알렌이 건재하다. 쇼가 없어도 아직은 층이 두껍다. 지난해 50경기에 등판해 모두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잭 매칼리스터, 댄 오테로, 닉 구디가 계투진의 부담을 덜어 준다. 여기에 30경기에 등판해 20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한 왼손 투수 타일러 올슨까지 만만치 않은 위력을 보여 줬다. 밀러의 과부하가 걱정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균형이 잘 맞춰져 있는 구단이다.
1위는 이견이 없는 뉴욕 양키스다. 일단 구위부터 여러 팀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한 차이가 난다. 광속구를 던지는 마무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에 그 뒤를 받치고 있는 계투진을 보면 상대 타자 입장에선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통산 132세이브를 올린 데이비드 로버트슨에 100마일을 던지는 델린 베탄시스와 토미 케인리가 버티고 있다. 선발투수로 보직을 전환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채드 그린도 90마일 후반대의 빠른공을 바탕으로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는 자원이다. 이들 모두 9이닝당 탈삼진이 12개가 넘는 전형적인 파워 투수로 타자를 압도한다. 아담 워렌도 지난해 평균자책점이 2.35로 기대 이상을 모습을 보여 줬고, 왼손 체이슨 쉬리브도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불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메이저리그. 불펜 싸움에서 누가 우위를 점하며 월드시리즈 우승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지 지켜볼 일이다. 성적의 키를 쥐고 있는 쪽은 불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