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아웃카운트 여섯 개 가운데 다섯 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를 지우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상대해야 할 진짜 '마지막' 타자는 바로 전 타석에서 홈런 공동 1위에 오른 최정(31·SK)이었다.
두산은 24일 인천 SK전에서 10-9로 이겼다. 2-3으로 뒤진 6회 대거 8점을 뽑아내면서 10-3까지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다 이겼다고 생각했던 8회 SK의 급습을 받았다. 불펜 김강률이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연속 4안타를 허용했고, 뒤이어 올라온 김승회도 한동민에게 적시타를 내줬다. 그리고 SK 간판 타자 최정에게 결국 큼직한 2점 홈런을 얻어 맞았다. 순식간에 스코어는 1점 차. 승부는 그렇게 안갯속에 빠졌다.
결국 함덕주가 나왔다. 2이닝이 남아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등판할 수 있는 투수는 함덕주밖에 없었다. 이미 동료 불펜 투수들이 다 소진된 상태여서가 아니다. 함덕주는 지금 두산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투수여서다.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경기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8회는 삼자범퇴. 9회 아웃카운트 두 개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고비가 왔다. 9번 김성현에게 좌전 안타를 맞았다. 2사 1루. 다시 노수광에게 볼넷을 내줬다. 2사 1·2루. 다음 타자 한동민 역시 풀카운트에서 6구째 볼을 골랐다. 2사 만루. 그리고 타석엔 다시 운명적으로 최정이 섰다. 승리를 지키기 위해 함덕주가 반드시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이었다.
숨막히는 1구, 1구 승부가 시작됐다. 최정이 초구 체인지업에 헛스윙을 했다. 2구째는 직구였지만 볼이 됐다. 3구째는 체인지업. 최정이 특유의 부드러운 스윙으로 공을 때려 하늘 위로 띄웠다. 큰 포물선을 그린 타구는 왼쪽 외야 폴 바깥쪽으로 넘어갔다. 아슬아슬하게 파울이 됐다.
시소처럼 양 팀 사이를 오가던 흐름은 그 순간 두산 쪽으로 향했다. 최정은 함덕주가 던진 마지막 체인지업에 헛스윙을 했다. 삼진. 모든 게임이 끝났다. 이 경기 최고의 명장면이자 최후의 승부에서 함덕주는 상대 팀의 가장 강한 타자를 제손으로 꺾었다.
경기 후 함덕주는 "경기 중반 점수 차가 많이 벌어졌지만, 혹시 몰라 준비를 하고 있었다"며 "SK 타선이 워낙 강해서 마운드에서 확실하게 던지려고 했다. 양의지형 사인을 따라 던진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9회 찾아온 위기도 되돌아봤다. "투아웃까지 잘 잡았지만, 전력으로 던지다 안타를 맞아 심리적으로 흔들렸다"며 "그때 이강철 코치님과 의지 형이 '지금까지 충분히 잘 던졌다. 여기서 안타를 맞아도 아무도 너를 탓할 사람이 없다'고 말씀해 주셔서 끝까지 자신 있게 던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함덕주는 최정을 이겼고, 두산은 SK를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