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회 칸 국제영화제가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에서 8일(이하 현지시간) 개막했다.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만큼 전 세계 영화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매해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70여 년간 쌓은 명성은 쉽게 꺾일리 없다.
올해 칸 영화제는 영화제 안 팎으로 더 많은 변화를 꾀할 전망. 여성 심사위원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미투(Metoo)운동을 의식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한편, 경쟁부문에 한국과 중국, 일본의 영화를 모두 초청하면서 아시아 영화 시장의 중요성을 높이 치하했다. 변두리로 취급됐던 여성 영화인과 아시아 영화를 무대 중심에 세우면서 빗장을 한껏 풀어헤친 듯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하지만 내부 압박은 강해졌다. 공식 상영에 앞선 언론 시사회를 폐지시켰고 레드카펫 위 셀프카메라 촬영도 전면 금지됐다. 또 지난해 칸 영화제의 발목을 잡았던 넷플릭스 작품들은 칸 영화제에서 당분간 볼 수 없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 영화제는 영화인들에게는 여전히 '꿈의 무대'다. 한국 영화는 올해 단 두 편만 칸으로 향한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윤종빈 감독의 '공작'은 미드나잇 스크리닝을 통해 상영된다. '버닝'은 세계 각지의 영화 20편과 황금종려상을 놓고 격돌한다. 한국영화는 3년 연속 경쟁부문에 진출했지만 수상엔 실패했다. '버닝'에 거는 기대감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71회 칸 영화제는 8일부터 19일까지 11일간 개최된다. 개막작은 스페인 영화 '에브리바디 노우즈(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폐막작은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테리 길리엄 감독)'다.
女심사위원·亞영화 '눈에띄는' 챙겨주기 71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맡는다. 이례적인 여성 심사위원장이다. 70회의 행사가 치러지는 동안 여성이 심사위원장으로 임명된 경우는 단 12차례다. 심사위원은 중국 배우 장첸, 프랑스 배우 레아 세이두, 미국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 미국 에바 두버네이 감독, 프랑스 로베르 구에디귀앙 감독, 캐나다 드니 빌뇌브 감독, 러시아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 브룬디 싱어송라이터 카쟈 닌이 선정됐다. 심사위원장을 포함한 여성 심사위원이 5명, 남성 심사위원이 4명으로 결정됐다. 영화제 전반의 분위기 변화를 예견케 한다.
이들 심사위원이 심사할 경쟁작에는 한국의 '버닝' 뿐만 아니라 'Ash is purest white(지아 장커 감독·중국)', 'Netemo Sametemo(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일본)', 'Shoplifters(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일본)' 등 중국과 일본의 작품도 포함됐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모두 초청 받으면서 아시아 영화의 강세가 새삼 눈에 띈다. 또 거장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에서 신선한 이름의 감독들이 이름을 올리며 진출작으로도 칸의 세대교체와 분위기 쇄신을 엿보이게 한다.
韓영화 대표 '버닝·공작'…유태오·'모범시민'도 관심 한국 영화계를 대표해 칸 무대를 밟는 작품은 '버닝'과 '공작'이다. 경쟁 진출작 '버닝'은 폐막 직전인 16일 오후 6시30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 공식 스크리닝을 통해 상영된다. 이창동 감독과 유아인·스티븐 연·전종서가 15일 출국해 레드카펫과 기자회견 등 공식 일정을 소화한다. '공작'은 '버닝'에 앞선 11일 세계 영화인들과 만난다. 윤종빈 감독과 황정민·이성민·주지훈이 10일 출국, 기립박수의 주인공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한국 영화와 영화인들은 비단 국내 활동에 국한돼 있지 않다. 유태오는 러시아 영화 '레토(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로 '버닝'과 같은 부문인 경쟁부문에 초청받는 깜짝 소식을 전했다. 유태오는 극중 고려인 2세 아버지와 러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유명 록가수 빅토르최를 연기, '버닝'의 유아인·스티븐 연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자동 노미네이트 됐다.
단편영화도 있다. 김철휘 감독의 '모범시민'은 칸 영화제가 치러지는 주간 함께 진행되는 대표적 사이드바 부문 비평가주간(57회)에 초청됐다. '모범시민'은 러닝타임 11분52초 안에 인간의 사회적 위선을 감독 특유의 독자적인 문법으로 날카롭게 꼬집어냈다. 전 세계에서 선별 된 10편의 중·단편과 'Leica Cine Discovery' 상을 두고 경쟁한다. 비평가주간 심사위원장은 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맡았다.
금기부터 미투까지 '호불호 갈린' 변화 71회 칸 영화제의 가장 큰 변화는 레드카펫 셀카 금지와 언론시사회 폐지, 그리고 넷플릭스 거부다. 셀카 금지는 레드카펫 행사 진행이 느려지고 격조없이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만 연출된다는 이유에서 여러 번 언급됐던 조항이다. 명확한 단속 방법이 없어 차일피일 미뤄졌지만 올해는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이 공식 입장까지 표명했다. 공식상영 전 진행된 프레스상영도 71회부터 사라진다. 칸 영화제를 찾는 전 세계 취재진 및 평론가는 칸 영화제 사무국 측 추산 약 4000명이다. 극장 객석에 한계가 있는 만큼 취재 편의를 위한 프레스상영이 공식 수순처럼 열렸지만 칸 영화제 측은 단호한 폐지를 선언했다. 리뷰 역시 엠바고가 걸린다.
기자들과의 기싸움은 시작됐다. 칸 영화제와 넷플릭스는 영화제 초청 및 상영을 두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극장법에 따른 극장 사업자들의 반발로 칸 영화제 측은 '프랑스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만 경쟁부문에 출품할 수 있다'는 규정을 명시했다. 결국 넷플릭스는 올해 칸 영화제에 자사 작품을 출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칸 영화제이기에 더 의미있는 그림이 된 모습도 있다. 전세계 대중문화업계를 집어삼킨 성폭력 문제에 목소리를 낸 것. 영화제 측은 '좋은 행동이 필요하다. 파티를 망치지 말라. 성희롱을 멈춰라'는 내용이 담긴 프랑스어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다. 성폭력을 당했을 때 신고가 가능한 핫라인 번호도 안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