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폭스스포츠 아시아판에는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에 나서는 필리핀 축구대표팀 스벤-예란 에릭손(71·스웨덴) 감독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대표팀을 이끄는 세대라면 조별예선 통과 가능성도 있다."
필리핀(FIFA랭킹 116위)은 이번 대회를 통해 아시안컵 무대에 데뷔한다. 첫 출전이지만, 상대는 만만치 않다. 필리핀은 한국(53위), 중국, 키르기스스탄과 함께 C조에 편성됐다. 게다가 조별예선 첫 경기(7일)는 파울루 벤투(50·포르투갈) 감독이 이끄는 한국과 치른다. 한국은 59년 만에 아시아 정상을 노리는 강력한 우승 후보다.
에릭손 감독이 강팀과 묶이고도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꾸준히 조직력을 다져온 대표팀 멤버 덕분이다. 필리핀은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엔트리 23명 중 30세 이상의 베테랑 선수를 7명이나 포함했다. 30세 이상이 3명뿐인 한국보다 2배 이상 많다. 27세 이상 선수까지 따지면 14명으로 늘어난다. 이들은 지난달 스즈키컵에서 4강까지 오르며 실력을 증명했다. 필리핀 축구팬들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애스컬스(Azkals·야생견이라는 뜻으로 필리핀 축구대표팀의 애칭)'의 황금세대가 '아시아의 월드컵'에서도 사고를 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경험이 풍부한 미드필더 슈테판 슈뢰크(32)는 필리핀 축구의 심장이다. 2004년 그로이터 퓌르트 유니폼을 입고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슈뢰크는 호펜하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등을 거쳐 2017년까지 독일 무대를 누볐다. 분데스리가 1부와 2부를 오가며 쌓은 출전 경력만 무려 237경기다. A매치 기록은 33경기(4골). 필리핀의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뛰는 슈뢰크는 날카로운 패스와 번뜩이는 돌파로 공격의 활로를 여는 역할을 한다. 폭스스포츠 아시아판은 그를 이재성(홀슈타인 킬)과 함께 UAE 아시안컵에서 주목해야 할 미드필더 6인에 꼽으면서 "슈뢰크는 필리핀 대표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선수다. 분데스리가에서 유럽 축구를 경험한 것이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독일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슈뢰크는 일찌감치 독일 축구계의 주목을 받은 특급 유망주 출신이다. 2004년 독일 18세 이하(U-18) 대표팀에 발탁된 것을 시작으로 U-19 대표팀과 U-20 대표팀을 거쳤다.
공교롭게도 어린 슈뢰크의 재능을 눈여겨본 것은 울리 슈틸리케(69·독일)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이다. 당시 독일 청소년대표팀을 이끌던 슈틸리케 감독은 슈뢰크를 마누엘 노이어(32·바이에른 뮌헨), 케빈-프린스 보아텡(32·US사수올로) 등과 함께 2005 U-19 유럽선수권에 나설 멤버로 뽑았다. 노이어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대표팀의 주장 완장을 찬 독일 축구의 상징이다. 독일은 이 대회에서 4강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슈틸리케 감독의 기대와 달리, 슈뢰크는 성장이 더뎠다. 향후 독일의 미래를 책임질 것으로 보였던 그는 독일 성인대표팀에 좀처럼 뽑히지 못했다. 마침 이때 필리핀 대표팀이 러브콜을 보내왔다. 슈뢰크는 3년간의 고민 끝에 2011년 필리핀 대표팀 소속으로 첫 A매치를 치렀다. 그는 2013년 필리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슈뢰크는 폭스스포츠 아시아판과 인터뷰에서 "마치 월드컵에 나서는 기분"이라면서도 "당연히 한국과 중국은 강팀(big names)이다. 특히 한국은 기술적으로 전술적으로 무척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무대에도 뒤지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한국은 필리핀은 얕보면 안 된다. 우리는 잃을 게 없다. 배팅업체들은 우리를 '언더독(underdog·스포츠에서 이길 가능성이 작은 약자)'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료와 수치를 넘어서겠다"고 다짐했다. 슈뢰크는 "이번 아시안컵은 분명 내 축구인생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