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도였다. 한국 축구는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우승의 상승세를 타고 59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까지 도전했다. 축구팬들과 언론의 기대도 최고조였다. 모두가 합심해서 하나의 목표를 바라본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다만 대회 도중 의무 문제 같은 다른 부분이 주목받은 것은 안타까웠다. 내가 아는 한국 선수들은 능력이 좋다. 더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다. 메이저 국제 대회에서는 축구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아쉬움이 컸다. 이제 대회는 끝났다.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진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만 가지면 된다. 주눅 들 필요 없다. 졌을 때 당당했으면 좋겠다.
벤투호의 경기력을 평가하면 한마디로 상대와 상황에 따른 대처가 약했다. 축구에 대한 철학은 누구나 있다. 나도 있다. 다만 철학과 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유럽과 아시아 선수들의 능력과 특징은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치른 모든 경기 전술은 다 똑같아 보였다. 쉽게 말하면, 상대가 한국 경기를 한 경기만 분석해도 될 정도였다. 축구는 꾸준함도 중요하지만, 변화를 줘야 할 때는 180도 다른 무언가를 보여야 이길 수 있는 스포츠다. 승부처와 상대에 따라 변칙 전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벤투호에는 그게 없었다.
주전 선수를 믿어 주는 것도 좋지만, 체력 관리를 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대표팀에 뽑힌 선수 23명은 기량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몇몇 선수가 체력이 고갈되는 모습을 보인 점은 아쉽다. 선수는 저마다 다른 장점을 갖고 있다. 상대에 따라 효과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는 따로 있다. 벤투 감독은 문선민 대신 나상호를 대표팀에 발탁한 이유를 분명히 설명할 수 있었지만, 정작 대회에서는 어떤 선수의 특징을 살리는지 경기력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KFA 제공
떠나는 기성용과 구자철은 그동안 정말 수고가 많았다. 기성용이 태극마크를 달고 보인 열정과 업적은 컸다. 축구 선배인 내가 봐도 대단하다. 기성용은 세대가 아닌 시대가 바뀌는 시점에서 주장을 맡았던 선수다. 한국 축구의 시스템이 바뀌면서 과거 시대와 새로운 시대의 선수들이 함께 뛰는 격변기를 겪었다. 인식과 생각이 다른 선수들을 하나로 묶었다. 구자철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너무 고맙다. 어떻게 보면 은퇴지만, 다른 한편으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황희찬·황인범·이승우에게는 이제 대표팀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시점이 왔다. 기성용과 구자철이 빠지면서 황희찬과 이승우가 대표팀의 버팀목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신 지금처럼 급하면 안 된다. 나도 변화가 있고 세대 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급했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보면 당시 급했다고 해서 무언가 빨리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더 흔들릴 뿐이다. 조금 더 기다리고 천천히 가는 대신, 동료와 팬들에게 더 믿음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돼야 한다. 한국 축구가 기성용과 구자철을 보내면서 황희찬과 이승우에게 기대하는 점이다. 꾸준히 대표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플레이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이 돋보이기보다 동료를 돋보이게 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연합뉴스 제공 우리 후배들이 이것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고 해도 한국은 언제든 우승할 수 있는 팀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만큼은 언제나 1등이다. 자신감을 가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