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계약(FA) 역대 최고 보수로 원주 DB의 유니폼을 입은 김종규(28·207cm)가 시즌 개막을 맞이하는 각오였다. 샐러리캡(선수연봉총액상한·25억원)의 절반을 넘는 12억 7900만원에 창원 LG를 떠나 DB에서 뛰게 된 김종규는 높은 연봉만큼, 자신에게 무거운 기대와 책임감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DB의 홈 개막전이었던 6일, 전주 KCC전은 '못하면 욕 먹고 잘하면 본전인' 김종규의 살얼음판 같은 처지를 잘 보여줬다.
김종규는 6일 원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KCC와 홈 개막전에서 29분 5초를 뛰며 15득점 7리바운드의 성적을 거뒀다. DB는 막판 KCC의 끈질긴 추격에 고전하면서도 86-82로 승리했고, 김종규는 팀 최다 득점자인 칼렙 그린(34·19득점 7리바운드 7어시스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물론 이날 김종규가 보여준 모습은 '최고 연봉자'라는 기대감에 100% 걸맞은 활약이라고 하긴 아쉬움이 남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적한 뒤 손발을 맞출 시간도 많지 않았고, 몸 상태 역시 100%가 아니다. 이상범(50) DB 감독이 미디어데이 행사 때 얘기한 것처럼 햄스트링 부상이 남긴 여파가 있다. 이 때문에 이 감독은 1, 2라운드 김종규의 출전 시간을 25분 내외로 조절할 생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자신을 향한 기대감에 비해 새 팀에 적응할 시간은 짧았고 부상 여파까지 있다보니 경기 초반 김종규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1쿼터 2점슛 하나와 자유투로 얻은 2점을 묶어 전반 4득점에 그쳤고 리바운드는 하나도 없었다. 반면 턴오버만 혼자 4개를 범하는 등 김종규답지 않은 플레이가 이어졌다. 극심한 부담감 때문인지 여러모로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후반이 되자 김종규의 조금씩 본래 모습이 살아났다. 김종규와 함께 올 시즌 DB 유니폼을 입은 베테랑 가드 김태술(35)의 리드가 빛을 발했다. 김종규가 3쿼터에서만 7득점 6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골밑 존재감을 떨치기 시작하자 DB의 분위기도 상승세를 탔다. 2쿼터까지 전날 연장 접전을 치르고 온 팀답지 않게 빠른 공수 전환으로 압박하며 외곽포까지 터뜨린 KCC에 45-47로 뒤졌던 DB는 67-58로 앞선 채 3쿼터를 마무리했다.
4쿼터, KCC의 추격이 더 거세지면서 경기는 한층 열기를 띄었다. 그러나 높이에서 약점을 가진 KCC를 상대로 김종규가 골밑을 잘 지켜내며 득점을 저지했고 그 사이 그린과 허웅(26·13득점 4어시스트) 김현호(31·10득점)가 공격에서 몰아치며 마지막까지 리드를 지켜내 첫 승을 가져왔다.
부진했던 전반에 비해 살아난 모습을 보인 후반, 경기력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지만 김종규의 존재감이 DB에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건 분명히 증명해보인 한 판이었다. 김종규의 높이가 더해지면서 과거 김주성(40·은퇴)-윤호영(35) 그리고 로드 벤슨(35)을 앞세워 '동부산성'으로 군림하던 DB의 강점이 다시 드러났다. 이날 경기는 '원조 동부산성' 멤버였던 김주성 코치의 데뷔전이기도 해 김종규의 출전이 더욱 의미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