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에서 '기생충'으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과 국제장편영화상까지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92년 아카데미 최초의 비 영어 작품상이라는 믿기 힘든 기록을 썼다.
단편 영화를 만들던 27년 전 그때부터 전세계를 놀라게한 지금까지, 아카데미의 역사를 바꾼 봉테일의 역사를 짚어본다.
◆영화감독을 꿈꿨던 시네키즈
1969년생으로 대구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가 소설가 구보 박태원이다. 말수가 적었고, 공부는 잘 했고, 여러 가지 책 읽기를 좋아했으며 그림과 문학과 음악을 좋아했던 봉준호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다. 특히 그는 당시의 자신을 영화광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리고 연세대 영화 동아리에서 만든 16mm 단편영화 '백색인'(1993)으로 영화감독 봉준호로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에 입학했고, 단편영화 '프레임 속의 기억'(1994), '지리멸렬'(1994)을 만들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후 봉 감독은 본격적으로 충무로에 뛰어들어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데뷔의 기회를 잡게 되는데, 31세에 연출한 '플란더스의 개'(2000)다.
◆멈추지 않는 흥행 열차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에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약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막을 내렸다. 그러나 봉준호는 곧바로 다음 작품을 내놓는다. 범인도 잡히지 않는 범죄 영화를 누가 보겠냐는 우려를 깨부수고, 지금껏 보지 못한 범죄 영화를 선보인다. 525만 명을 동원한, 지금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살인의 추억'(2003)이다.
데뷔작 이후 만든 모든 작품을 성공시켰다. '살인의 추억'은 물론 '괴물'(2006·1301만 명), '마더'(2009·301만 명), '설국열차'(2013·935만 명), '옥자'(2017·넷플릭스), '기생충'(2019·1008만 명)까지. 영화광이었던 어린 봉준호는 그렇게 흥행 열차를 탄,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 됐다.
◆봉테일이 선사하는 삑사리의 예술
20년간 영화를 만들며 봉준호는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름과 디테일을 합친 별명이다. 화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다 그의 의도가 담겼기 때문.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꼼꼼하게 챙기고, 스쳐 지나가는 설정 하나도 모두 복선이 된다. 정교하면서 철저한 봉테일의 손길은 곧 그의 영화를 대표하는 특징이 되었다.
그의 작품에 담긴 미덕을 '삑사리의 예술'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유명 영화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봉 감독의 표현을 빌려 '삑사리의 예술(L'art du Piksari)'이라고 설명한 것이 시초였다. 굉장히 섬세하게 모든 것을 계획하는 봉준호 감독은 관객이 상상치 못한 순간들 또한 빈틈 없이 직조한다. 이 같은 순간들이 모여 봉준호 특유의 '삑사리의 예술'로 탄생했다. '살인의 추억'에서 사건 현장에 도착한 송강호가 논두렁에서 미끄러 넘어진다든다, '괴물'에서 변희봉이 죽기 전 송강호에게 건넨 총에 사실 총알이 남아있지 않다든가, '설국열차'에서 크리스 에반스가 도끼 싸움을 하다 생선을 밟고 넘어진다든가. 매 작품마다 등장하는 삑사리로 익숙함을 지우고 관객이 허를 찌른다.
◆봉준호라는 장르
뉴욕타임스는 "우리는 봉준호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는 "봉준호 자체가 곧 장르"라고 말했다. 인디와이어도 "봉준호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고 평했다. 봉준호의 세계, 봉준호라는 장르에 대해 전세계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스스로를 장르영화 감독이라고 말하면서도, "내 작품은 장르가 모호하다"고 설명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봉준호 장르'를 새롭게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다. 기존의 영화 문법을 벗어난, 한 편의 영화 안에서도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밝으면서도 어둡고 절망적이면서도 유쾌한, 그리고 그 안에 인간과 사회를 통찰하는 메시지를 담은, 봉준호 장르는 이렇게 정의내려지고 있다.
◆소심한 영화광의 성장 영화
"저는 12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소심하고 어리숙한 소년이자 영화광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만지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기생충'으로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봉 감독은 이처럼 특별한 소회를 전했다. 영화광이었던 소년은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단 72명만이 품에 안은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영화광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지리멸렬'을 세상에 내놓던 꿈 많던 영화감독, 그리고 매 작품 흥행은 물론 평단까지 사로잡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20여년의 시간이 쌓이고 농축되며 지금의 봉준호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