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선언한 한국 남자농구의 간판스타 양동근이 1일 KBL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양동근은 2004~2005시즌에 데뷔, 현대모비스에서만 뛰며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상을 4차례나 받았고 2019~2020 시즌을 끝으로 17년간 프로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정시종 기자
"누구나 다 (양)동근이 형을 꿈꾸겠죠. 형처럼 되고 싶은, 롤모델이요."
2018~2019시즌 울산 현대모비스가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챔피언결정전까지 제패하며 통산 다섯 번째 통합우승을 일궈낸 뒤, 당시 현대모비스 소속이었던 이대성(30·전주 KCC)을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이다.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던 자리에서 나온 말이라 양동근(39)은 조금 멋쩍은 기색으로 웃었으나, 이대성의 말을 부정할 선수는 아마 없을 것이다.
모두의 롤모델이자 한국프로농구(KBL) 올 타임 레전드인 양동근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양동근의 소속팀 현대모비스는 지난달 31일, "양동근이 2019~2020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2004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뒤 17년 만에 전하는 은퇴 소식이었다. 현대모비스는 "리그 조기 종료 이후 구단 및 코칭스태프와 회의를 거쳐 내린 결정"이라며 "약 1년간 코치 연수를 거쳐 지도자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불혹에 은퇴해도 아쉬운 건, 양동근이니까
어느덧 불혹, 보통 선수라면 은퇴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나이다. 그러나 양동근의 은퇴 소식을 들은 농구팬들은 "왜 벌써…"라며 말끝을 흐렸다. "너무 이른 결정", "아직 더 뛰기 충분해보인다"는 반응도 줄을 이었다. 하필이면 만우절을 하루 앞두고 들려온 소식이라, 팬들은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양동근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건재함을 보여줬다. KBL 제공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선수에게 은퇴가 너무 이르다는 평가는 쉽게 나오기 어렵다. 그만큼 양동근은 나이와 무관한 경기력으로 코트를 휘저었고, 올 시즌까지도 충분히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나이가 듦에 따라 은퇴를 결정하는 건 경기력 부진, 기량 저하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간혹 큰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는 경우도 있지만, 2019~2020시즌 40경기에 출전해 경기당 평균 28분24초를 뛰며 10득점에 4.6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한 양동근의 성적을 보면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양동근은 화려함보다 성실함으로, 반짝임보다 꾸준함으로 더 높이 평가 받는 선수다. 한국 농구를 빛낸 농구 스타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KBL에서 양동근만큼 꾸준한 활약을 이어온 선수는 찾기 쉽지 않다. 기록 이상의 가치를 지닌 선수이자 팬들에게 두근거림을 주는 선수가 바로 양동근이었다. 지난 시즌 통합우승 후 당시 외국인 선수였던 섀넌 쇼터(31)가 양동근을 두고 "KBL의 GOAT(Greatest of All Time)"라고 표현한 이유기도 하다.
그렇기에 양동근을 보내야 하는 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크다. 하필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리그가 조기 종료된 시즌이 그의 은퇴 시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앞서 은퇴한 또다른 KBL 레전드 김주성(41) 코치처럼 은퇴 선언 후 한 시즌이라도 더 뛰며 은퇴 투어를 하길 바라는 팬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06-2007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 후 환호하는 양동근과 유재학 감독의 모습. IS포토
◈모비스와 함께 한 양동근의 17년
2004년 드래프트 최대어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아, 당시 외국인 선수 임대 영입 과정에서 전주 KCC로부터 지명권을 넘겨 받은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에 입단한 뒤부터 지금까지 양동근은 늘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전체 1순위 드래프티라는 기대감 속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쉬지 않고 훈련에 매진하며 자신을 갈고 닦았다. 그런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KBL 정규리그 MVP 4회(2005~2006·2006~2007·2014~2015·2015~2016) 플레이오프 MVP 3회(2006~2007·2012~2013·2014~2015) 베스트5 9회(2005~2006시즌부터 상무 제외 9시즌 연속 수상) 등 수없이 많은 상을 휩쓸며 KBL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양동근의 역사는 곧 모비스의 역사와도 궤를 같이 한다. 2004년 '만수' 유재학(57) 감독이 돌아온 모비스는 양동근이라는 카드를 손에 쥐며 팀 재건에 성공했다.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고(故) 크리스 윌리엄스와 함께 2005~2006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2006~2007시즌, 2009~2010시즌, 2014~2015시즌, 2018~2019시즌 정상에 올랐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6번이나 우승 반지를 꼈다. 모비스를 '왕조'의 길로 이끈 최고의 스타인 셈이다.
은퇴를 선언한 한국 남자농구의 간판스타 양동근이 1일 KBL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다.양동근이 유제학 감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있다. 정시종 기자 17년 동안 오직 한 팀의 유니폼만 입고 뛴 선수. 양동근의 가치는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처럼, 양동근은 매 시즌 팀을 위해 헌신하고 수 차례 정상에 올려놨다. 팀의 주장으로서, 또 에이스로서 힘들어도 코트에서 1분이라도 더 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동료들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 17년 동안 한 팀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이어온 그는 이제 유니폼을 벗고 현역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코트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현대모비스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해외 코치 연수를 통해 지도자라는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게 될 것"이라며 전폭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모비스와 양동근의 동행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며, 지도자로 돌아올 양동근의 모습을 코트에서 곧 볼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