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구교환이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CGV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영화 ‘반도’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영화 ‘반도’는 '부산행’ 그 후 4년, 폐허가 된 땅에 남겨진 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로 오는 7월 15일 개봉된다. 박세완 기자 park.sewan@jtbc.co.kr / 2020.07.09/ 빌런의 새로운 얼굴, 배우 구교환이다.
영화 '반도(연상호 감독)'를 통해 상업영화에 처음 도전한 구교환. 강동원·이정현 등 베테랑 배우들과 이레·이예원 등 신예들 사이에서 독특하고 인상적인 캐릭터로 두각을 드러냈다. 알고 보면 신인이 아닌, 데뷔 12년 차의 배우 구교환은 예정된 '성공 길'을 걷고 있다.
'반도'는 전작 '부산행'의 4년 후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좀비 사태 이후 폐허가 돼 버린 한반도를 배경으로 연 감독의 상상력이 가득 담긴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그려낸다. 전편에서 주적이 좀비였다면, 이번 '반도'의 주적은 반도에 살아남아 미쳐버린 사람들이다. 구교환은 이 미친 사람들의 꼭대기에 섰다. 사태 당시에는 민간인을 구하는 군대였으나, 이제는 인간성을 상실한 미친 사람들의 우두머리 서 대위를 연기한다.
서 대위는 평범한 전형성을 깨부수는 캐릭터다. 군인이지만 마르고 유약하다. 희망이 꺼져버린 세상에 남겨진 그는 언제나 나른한 표정으로 만취할 뿐이다. 김민재가 연기하는 황 중사 등 부하들이 거친 악행으로 반도를 지옥으로 만들고, 서 대위는 지옥이 된 반도를 관망한다. 이런 모습으로 4년간 자리를 지켜온 것이 의아해질 때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며 독특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나른해 보였던 눈빛은 그 안에 광기를 숨기고 있던 것이었고, 마냥 연약한 듯했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무게감이 뿜어져 나온다. 어떤 관객들은 이런 서 대위를 두고 섹시한 빌런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관객들은 인간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긴 '반도'의 메시지라고 평가한다.
구교환에게서 서 대위의 모습을 본 연상호 감독의 심미안이 통했다. 크지 않은 체격에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마스크, 그리고 서 대위 캐릭터의 화룡점정인 독특한 보이스까지 구교환을 위해 준비된 서 대위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출연진이 여럿인 '반도'에서 분량이 많지 않은데도 이렇게나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영화 반도 구교환은 상업영화는 처음이지만 독립영화계에서는 이미 스타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2008년 단편영화 '아이들'로 데뷔한 후 단편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거북이들'·'4학년 보경이' 등에 출연했다. '거북이들' 등의 작품을 직접 연출하면서 감독 겸 배우로 독보적 입지를 다졌다. 특히 독립영화계에서 정점을 찍은 작품 '꿈의 제인'에서 트랜스젠더 제인 역으로 여러 영화 시상식을 휩쓸었다. 결국 2018년 제54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쟁쟁한 후보들을 모두 제치고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수상 후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를 넘고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촬영한 '반도'는 영역을 확장한 구교환이 내놓은 첫 성과다.
사실 독립영화계 스타 구교환의 작품을 봐왔던 팬이라면 '반도'가 아쉬운 결과물일지 모른다. 구교환의 매력을 완벽하게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도 나온다. 달리 말하면, 구교환의 잠재력이 '반도'의 서 대위 그 이상이라는 이야기다. 구교환은 이제야 패 하나를 까보였을 뿐이고, 여러 가지 패를 양손에 가득 숨기고 있다.
'이 배우 이렇게 될 줄 알았다'의 대표 주자가 된 구교환. 그를 발굴해 상업영화에 올려놓은 연상호 감독은 "(구교환이 처음 연기하는 걸 보고) 호아킨 피닉스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