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감독의 믿음에 대차게 부응했다. KT '주전' 중견수 배정대(25) 얘기다. 히트 상품을 넘어 KT 야수진 중심으로 우뚝 섰다.
배정대는 16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장했다. 이강철 감독은 경기 전 "이제 배정대를 장기적으로 1번 타자를 만들 생각이다"고 했다. 종전 타순인 6번에서 전진 배치했다. 남은 시즌도 큰 변수가 없으면 '리드오프 배정대' 체제를 고수할 생각이다.
배정대는 2014년 1라운더다. LG 지명을 받았다. KT는 신생팀 특별 지명을 통해 '5툴 플레이어' 유망주인 배정대를 영입했다. 종전 5년 동안 미완의 대기였다. 수비는 팀 내 최고 수준이지만, 타격 능력이 따라주지 못했다. 그러나 2020 스프링캠프에서 스윙과 타구 속도가 크게 향상됐다. 김강 타격 코치와의 교정 작업이 통했던 것. 이강철 감독은 기존 주전 우익수던 강백호를 1루수로 전환시키고, 외야 한 자리를 만든 뒤 배정대에게 맡겼다. 배정대의 공격력 성장을 믿었기에 할 수 있던 결단이다.
배정대는 히트 상품이 됐다. 3할대 타율을 유지했다. 펀치력도 증명했다. 누상에서는 기민한 주자다. 원래 강점이던 넓은 수비 범위와 강견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KT는 15일 기준 리그 5위다. 포스트시즌 진출 마지노선이다. 7~9월 리그 승률 1위를 기록할 만큼 안정된 전력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맷 윌리엄스 감독이 이끄는 KIA의 추격도 거세다. 한 경기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
이런 시기에 리드오프를 바꾸는 변화를 줬다. 결과에 따라 과욕으로 보일 수 있다. 이강철 감독은 "내년도 대비해야 한다"며 이러한 결정에 당위를 부여했다. 기존 리드오프 조용호의 몸 상태와 타격 컨디션이 떨어진 점도 반영했다.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배정대는 자신에 집중된 경기에서 특별한 재능을 뽐냈다. 일단 수비. 선발 투수 김민수를 도왔다. 상황은 이랬다. KT가 0-1으로 뒤진 3회 초 1사 1루에서 김민수가 김동엽에게 중견수 키를 넘기는 타구를 허용했다. 배정대는 재빨리 공을 꽂았고, 포구에 성공했다. 그리고 도움닫기 없이 1루 송구를 했다. 리터치 없이 진루를 시도했다가 귀루하는 주자 구자욱을 잡기 위해서다.
송구는 가운데 외야 워닝 트랙 앞에서 1루수 강백호의 바로 앞까지 뻗었다. 그리고 간발 차로 타자보다 공이 먼저 글러브에 들어갔다. 아웃 판정. 환상적인 플레이였다. 이 보살로 자신의 개인 첫 한 시즌 두 자릿수(10개) 보살을 기록했다. KT 역대 세 번째 기록이다.
좋은 기운을 스스로 만들어낸 배정대는 타석에서도 활약했다. 0-1로 지고 있던 KT는 3회 말 1사 뒤 문상철과 심우준이 연속 안타를 치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주자를 2루에 두고 나선 배정대는 삼성 선발 원태인으로부터 좌중간 적시타를 쳤다. KT는 리드를 내주지 않고 11-6으로 승리했다. 배정대의 타점은 결승타가 됐다.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6회 말 무사 1·3루에서는 쐐기 3점포까지 쏘아 올렸다. 7회도 주자 2명을 불러들이는 2타점 적시타를 쳤다. 이 경기 3안타 6타점. 배정대의 날이었다.
1번, 4번은 유독 타자들이 부담을 크게 느끼는 타순이다. 배정대는 그동안 주로 득점 기회에서 해결하는 역할을 했다. 이제는 만들어줘야 한다. 단시간 적응은 어렵다. 그러나 타순 변경 뒤 나선 첫 경기에서 공수 맹활약을 펼쳤다. 출발이 좋다. 그가 KT에 미치는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