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미투(Me Too) 논란에 휩싸인 후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자취를 감췄던 오달수가 11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이웃사촌(이환경 감독)' 언론시사회에 참석, 약 2년만에 공식석상에서 인사했다. 이날 행사에는 여느 때모다 많은 취재진이 모여 뜨거운 관심을 입증시켰다.
이날 "반갑습니다. 오달수입니다"라고 첫 인사를 건넨 오달수는 "날씨도 추운데 찾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며 "조금 전에 영화를 봤는데 누구보다 마음이 무거웠다. 영화를 보고 나니 3년 전 고생하셨던 배우 분들, 감독님, 스태프 분들에게 다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다.
오달수는 2018년 두 명의 여성에게 당시의 미투, 즉 성추행 고발을 당했다. 피해자라고 주장한 A씨는 두 번의 온라인 댓글을 통해 '1990년대 부산 소극장에서 오달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고, 연극배우 엄지영 씨는 JTBC '뉴스룸'과 인터뷰에서 "2003년 서울의 한 모텔에서 오달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실명과 얼굴을 드러낸 채 직접 인터뷰해 연예계를 발칵 뒤집었다.
오달수는 두 번의 공식입장으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처음엔 "억울하다. 사실무근이다"는 전면 부인의 내용이 가득했지만, 두번째 사과문에서는 "난 이미 덫에 걸린 짐승처럼 팔도 잘렸고, 다리고 잘렸고, 정신도 많이 피폐해졌다. 어떻게 말하든 변명이 되고 아무도 안 믿어 주시겠지만 준엄한 질책으로 받아들이겠다. 책임과 처벌 피하지 않겠다"고 '무조건 잘못'을 시사했다. 물론 "성추행, 성폭행은 없었다"는 입장만큼은 변함 없었다.
경찰청은 지난해 초 오달수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혐의 없음' 내사 종결 처리했다. 오달수가 출연했다는 이유로 개봉이 보류됐던 '이웃사촌'과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후 여러 번의 개봉 타이밍을 노렸지만 여의치 않았다. 오랜 눈치싸움 끝 가장 마지막에 촬영을 마친 '이웃사촌'이 먼저 공개되게 된 상황. '이웃사촌'은 미투 논란을 버티면서 막바지 촬영을 동시에 진행했던 작품이다.
공개된 영화는 오달수 없이는 개봉이 당연히 불가했을만큼 오달수에 의한, 오달수를 위한 영화로 완성됐다. 극중 오달수는 자택에 강제 연금된 차기 대선 주자로 분해 민주주의를 꽃피우려는 의로운 인물로 어느 작품보다 깊이있는 정극 연기를 펼친다. 배우 오달수의 최대 강점으로 꼽혔던 코믹 색깔은 최대한 배제한 채, 작품을 선택했을 당시 '천만 요정'의 이미지 변신을 꾀했음을 확인케 한다.
영화에서도 오프닝부터 등장, 컴백하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오달수는 "서먹해 할까봐 걱정이다"고 말하는 등 의도치 않았겠지만 몇몇 대사들과 인물이 처한 현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실제 오달수의 상황과도 연관지어 생각하게 만든다. 오달수 이슈로 주목받고 있는 '이웃사촌'의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온전히 다가갈지 주목도를 높인다.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나서게 된 심경을 묻는 질문에 오달수는 "솔직히 영화가 개봉이 되지 못했다면 평생 마음의 짐을 덜기 힘들었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운을 뗐다.
이어 "나에게는 (칩거한) 지난 3년이 우리 영화에서 보여지듯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제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동안 거제도에서 가족들과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그 분들이 항상 내 옆에 늘 붙어 있었다. 생각을 많이 할까봐, 단순한 생각들을 하기 위해 농사를 지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영화가 개봉 될 날만 기도하면서 지냈다"고 토로했다.
또 "'행운이 있고 불행이 있고 다행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너무 다행스럽게 개봉 날짜가 정해져 내 소회는 그렇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짊어지고 갈 짐을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달수가 운을 떼기 전 이환경 감독은 먼저 배우 오달수에 대한 애정을 표해 눈길을 끌었다. 이환경 감독은 "'7번방의 선물' 이후 7년만에 내놓는 작품이라 너무 떨리더라. 옆에 계신 오달수 선배님께 '내 옆에 꼭 계셔 달라'고 몇 번씩이나 부탁 드렸다. 달수 선배님도 많은 힘을 갖고 나와 주셨다"고 말했다.
이환경 감독은 "나는 오달수 선배님을 늘 '라면'이라고 표현한다. 라면같은 분이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언제 먹든 그때 그맛 그대로 나오고, 살찔 것 같아서 안 먹다 보면 다시 또 땡기는 그런 느낌이다"며 "연기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딱 그 맛 그대로가 담긴 것 같다. 늘 사랑한다"고 진심을 드러냈다.
정우는 "그간 오달수 선배님이 한국 영화에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해주시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관객 입장에서 스크린에 나오는 선배님의 모습을 오랜만에 보면서 반가웠고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오달수는 정의롭고 인간적인 '큰 인물'로 설정된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큰 일을 하기 전 과정에서 아버지이고, 일반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이웃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본의 아니게 가택연금을 당하면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 보낼 수 있는, 평범한, 다르지 않은 그런 인물로 다가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존 인물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로 분한 것에는 "나는 현대 정치를 이렇게 생각해봤다. 우리 현대사는 1950년 6.25부터 60년, 70년, 80년 광주까지 10년마다 한번씩 '하혈한다' 생각했다. 많이 듣고 배우고 이해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되려 조금도 편견없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연기할 수 있었다. 감독님도 그런 지점을 주문하셨다"고 밝혔다.
이날 오달수는 다양한 질문에 조근조근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도 긴장된 표정을 쉽게 풀지 못했다. 감독과 동료 배우들의 응원 속 호탕한 미소를 한번씩 짓기도 했지만 목소리는 작았고, 연신 죄송함과 감사한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하고 싶었던 말, 준비했던 말을 100% 완벽하게 꺼내지는 못했다고. 남은 이야기는 추후 진행되는 인터뷰에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웃사촌'은 개봉을 하게 됐지만 확정된 오달수의 차기 계획은 없다. 공식 복귀 전 촬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독립영화 '요시찰(김성한 감독)'과 '이웃사촌' 보다 앞서 마무리 지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김지훈 감독)' 개봉은 '이웃사촌' 상영 레이스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 될 예정이다.
오달수는 미투 사건 이후 처음으로 촬영에 임했던 '요시찰' 현장을 떠올리며 "오전 9시에 나가 새벽 1시까지 촬영을 했다. 하루도 안 쉬고 일주일 정도 찍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너무 재미있었다. 힘든 줄 모르게 재미있게 잘 찍었다"며 "추후 계획은 아직 없다"고 단언했다. 평생 연기를 위해 살았던, 현장에서 연기를 하며 다시금 살아있음을 느꼈을 오달수의 진정한 한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