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처음 열린 축구대표팀 한일전을 앞두고 당시 한국 선수단은 ‘지면 현해탄(대한해협)에 빠져죽겠다’는 각오로 일본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결과는 5-1 대승. 한국은 이어 열린 2차전 결과(2-2무)를 묶어 같은해 열린 스위스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67년 후 열린 통산 80번째 한일전은 모든 면에서 정반대였다. 스코어, 전술, 흐름, 투지까지 철저히 일본에 밀렸다. 2022 카타르월드컵 본선행 도전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요코하마 참사’였다. 25일 일본 요코하마의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A매치 한일전은 시종일관 무기력한 경기 끝에 0-3 완패로 끝났다. 세 골 차 패배는 2011년 삿포로에서 당한 0-3 참패 이후 10년 만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8위 한국은 일본(27위)을 맞아 전반 2골, 후반 1골을 잇달아 내주며 무너졌다. 일본전 상대전적은 42승23무15패가 됐다.
한국은 사실상 2진급 멤버로 나섰다. 손흥민(토트넘), 황의조(보르도)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 및 코로나19에 따른 소속팀 차출 규정 탓에 합류하지 못했다.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한국 감독은 고육지책으로 이강인(발렌시아)을 최전방에 세우는 ‘제로톱(최전방과 2선 구분 없이 상대를 교란하는 공격 전형)’ 전술을 꺼내 들었다. 2선에 기용한 나상호(서울), 이동준(울산) 등 발 빠른 공격수들과의 시너지를 기대한 변칙이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상대의 적극적인 압박과 패스워크에 수비라인이 허물어졌고, 공격수들은 고립됐다.
첫 실점은 전반 16분에 나왔다. 한국 수비수들이 위험지역에서 볼 처리를 미루는 사이, 오사코 유야(베르더 브레멘)의 힐패스를 받은 야마네 미키(가와사키)에게 골을 내줬다. 전반 26분에는 역습 수비 상황에서 가마다 다이치(프랑크푸르트)에게 추가 실점했다. 한국은 후반 38분 코너킥 수비 상황에서 엔도 와타루(슈투트가르트)에게 헤딩골까지 내주며 주저앉았다.
벤투 감독은 후반 들어 정우영(프라이부르크), 이정협(경남), 이동경(울산), 이진현(대전) 등 공격자원을 줄줄이 투입했지만,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후반 39분에야 이동준이 첫 유효슈팅을 기록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현역 시절 일본전에서 2골을 넣었던 안정환 해설위원은 “한일전은 승패만 남는 잔인한 경기다. 킥오프를 앞두고 동료들과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고 죽기살기로 뛰자’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회상했다. 한국이 경기력에 큰 차이가 없는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오랜 기간 압도한 건 “무조건 이긴다”며 투혼을 불태운 결과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슈팅 수(6대19)는 물론, 파울 수(7대12)에서도 밀렸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제공권이 낮은 한국 공격진에 속도가 느린 롱패스를 때렸다. 미드필드 싸움에서도 철저히 밀렸다.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는 홍철(울산)을 선발 기용한 것도, 카타르리그 선수(남태희·정우영)에 집착한 것도 의아하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부족했고, 경기 중 팀을 이끌 리더도 보이지 않았다. 골키퍼 김승규(가시와)가 아니었다면 5, 6실점도 가능한 졸전이었다”고 했다.
벤투 감독은 한일전 엔트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홍철, 주세종(감바 오사카), 손흥민 등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은 선수를 합류시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주세종과 손흥민은 결국 다른 선수로 교체됐고, 홍철은 선발 출전했지만 부진했다. 한일전 완패로 벤투의 ‘불통 리더십’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더욱 거세어 질 전망이다.
코로나19 우려 속에 일본 원정을 강행한 축구대표팀은 A매치 완패와 함께 쓴 입맛을 다셨다. 이날 도쿄올림픽 성화 봉송을 시작한 일본은 축구대표팀 라이벌전을 완승으로 마무리하며 올림픽 열기에 불을 지폈다. 벤투호는 26일 귀국 후 곧장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로 이동해 다음달 2일까지 ‘동일집단(코호트) 격리’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