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이었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는 부정적 시선도 있었다.
지난 2월 꿈을 좇아 미국으로 떠난 양현종(33·텍사스)은 수많은 불확실성, 편견과 싸웠다.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마이너리그 계약. 기대를 모았던 메이저리그(MLB)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묵묵히 터널을 지나왔고, 지난 27일(한국시간) 꿈에 그리던 MLB에 콜업됐다. 이어 LA 에인절스전 불펜 투수로 등판해 4⅓이닝 5피안타(1피홈런) 2실점 하며 데뷔까지 이뤄냈다.
조시 퍼셀은 양현종의 '도전'을 도운 조력자다. 미국 JP Sports 소속 에이전트로 계약을 현지에서 진두지휘했다. 그는 일간스포츠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양현종 계약에 대한 전반적인 얘길 들려줬다. 퍼셀은 "많은 MLB 구단은 양현종이 KBO리그에서 쌓은 커리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며 "양현종은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한 이력이 있어서 MLB 구단의 평가 목록에 있었다. MLB 구단들은 그가 오랫동안 쌓은 일관된 경기력을 인정했고, 매력을 느꼈다"고 전했다. 양현종은 2014년 11월 포스팅으로 MLB 진출을 노렸지만 불발됐다. 원소속팀 KIA로 복귀해 6년을 더 뛰고 마침내 '꿈의 무대'를 밟았다.
지난 2월 텍사스와 한 마이너리그 계약은 변수가 많았다. 1년 최대 185만 달러(21억원·연봉 130만 달러+인센티브 55만 달러)를 받을 수 있지만, 스플릿 계약(MLB와 마이너리그 신분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는 계약)이었다. 마이너리그에만 머문다면 연봉이 보장되지 않았다.
퍼셀은 "올해 MLB 오프시즌은 야구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움이 컸다. 양현종의 첫째 목표는 MLB 계약을 따내는 것이었다. 스프링캠프 시작 날짜가 다가오면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캠프 기간 경쟁 기회가 있는 구단에 가고 싶어했다. 여러 구단의 오퍼를 고려한 뒤 양현종이 텍사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해외 진출을 좀 더 빨리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었을까. 양현종은 30대를 넘긴 나이에 MLB 무대를 노크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시즌 개인 성적마저 크게 하락했다. MLB 계약을 따내지 못하면서 '나이가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퍼셀은 "선수를 평가하는 데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나이도 변수 중 하나인 게 확실하다. 다만 난 양현종이 나이가 많거나 어린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는 KBO리그 커리어 내내 엄청난 일관성을 보여준 엘리트급 선발이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 동안 선발 등판을 거르지 않았다. 지난해 MLB는 코로나19로 인해 팀당 60경기 단축 시즌으로 치러졌다. MLB 선발 투수들이 60~70이닝밖에 던지지 못했기 때문에 (지난해 많은 이닝을 소화한) 양현종은 매우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양현종은 스프링캠프 내내 치열하게 경쟁했다. 시범경기 5경기에 등판해 1세이브 평균자책점 5.40(10이닝 6실점)을 기록했다. 마지막 등판이었던 3월 30일 밀워키전에서 ⅔이닝 2실점 한 뒤 개막전 엔트리 탈락이 확정됐다.
퍼셀은 "양현종은 필요한 부분을 재빨리 수정했다. 새로운 환경에도 잘 적응했다. 짧은 기간(스프링캠프부터 약 45일)에 이렇게 한다는 것은 외국인 선수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충분히 잘 던졌지만,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계약서에 포함된 내용대로 FA(자유계약선수)를 선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현종은 텍사스에 남기로 결정했다. 편안함을 느끼고 자신을 잘 챙겨주는 구단에 머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올 시즌 텍사스 구단에 기여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