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영은 지난 5일 사직 롯데전 8-5로 쫓긴 9회 말 2사 1, 2루 위기 상황에서 구원 등판했다. 상대 타자는 '거인 군단' 4번 타자 이대호였다. 큰 것 한방이면 동점까지 내줄 수 있는 상황. 정해영은 슬라이더만 연속 5개 던져 이대호를 유격수 앞 땅볼로 유도했다. 결과는 6-4-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 KIA는 정해영의 위기 돌파로 8-5로 승리, 3연패를 탈출했다. 정해영은 시즌 4세이브째를 따냈다. 맷 윌리엄스 감독은 "커맨드가 좋다. 이대호를 상대로 과감하게 슬라이더를 던져 좋은 결과를 얻었다"라며 "지금까지 우리 팀에 굉장한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회열 전 KIA 수석코치의 아들인 정해영은 2020년 KIA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지난해 7월 1군에 처음 합류한 뒤 기대 이상의 호투로 추격조에서 필승조로 자리매김했다. 5승 4패 11홀드 평균자책점 3.29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올 시즌은 마무리로 보직 변경해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있다. 전상현의 어깨 부상 이탈과 대체 마무리 후보였던 박준표의 부진 속에 클로저 중책을 맡아 기대 이상의 호투 중이다. 총 13경기에 등판해 3승 1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0.63을 기록하고 있다. 시즌 세이브 4개 이상을 기록 중인 선수 중 평균자책점이 가장 낮다. 피안타율은 0.176로 굉장히 낮은 편이다.
지난해에도 보완점으로 손꼽힌 제구력은 여전히 숙제다. 9이닝당 볼넷이 5.63개에서 올해 6.75개로 더 올랐다. 9이닝당 탈삼진은 7.51개에서 4.91개로 떨어졌다. 마무리 투수는 강속구와 함께 탈삼진 능력이 중요하게 손꼽힌다. 제구력이 흔들리면 불안하다.
하지만 정해영은 위기를 맞으면 더 강해진다. 득점권에서 피안타율은 0.053이다. 시즌 평균보다 훨씬 낮다. 기출루자 득점 허용률도 0.200으로 신예 선수로는 뛰어난 수치다.
지난달 22일 잠실 LG전에선 2-2로 맞선 9회 말 등판해 3-2로 역전한 연장 10회 초 볼넷 2개와 안타로 2사 만루에 몰렸다. 하지만 대타 김주성을 143㎞ 직구로 삼진 처리하고 경기를 매조졌다. 투구 수는 45개였다. 올 시즌 2이닝 이상 투구만 세 차례나 하는 등, 불펜의 마지막 보루로 팀 승리를 완성짓는다.
정해영은 직구 평균 구속이 140㎞ 중반으로, 사령탑이 선호하는 마무리 투수 유형은 아니다. 하지만 두둑한 배짱이 강점이다.
윌리엄스 감독은 마무리 정해영의 매력을 트레버 호프먼에 비유해 설명했다. 호프먼은 '지옥의 종소리'라는 애칭 속에 빅리그 통산 601세이브를 거둔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다. 윌리엄스 감독은 "내가 선수 시절에 (트레버) 호프먼은 공을 세게 던지는 투수가 아니었지만 변화구를 잘 구사했고, 항상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갔다. 정해영도 5일 롯데전 2스트라이크에서 좋은 공을 던졌다"라고 칭찬했다. 정해영이 강속구 유형은 아니지만,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는 두둑한 배짱을 높이 샀다.
정해영은 한 단계씩 발전을 꾀한다. 지난해엔 직구와 슬라이더 투 피치 위주였다. 올해는 포크볼 비중을 4.2%에서 10.6%로 높였다. 구속 차를 활용해 상대 타선을 요리한다.
2021년 1차지명 투수 이의리와 함께 팀 마운드를 책임질 미래 자원으로 손꼽히는 정해영은 어려운 상황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