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바리' 손아섭(33)이 긴 부진의 터널을 뚫고 나왔다. 그리고 끝내 3할 타율에 도착했다.
손아섭은 KBO 역대 3000타석 이상을 소화한 KBO리그 타자 가운데 통산 타율 3위(0.324)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고(故) 장효조(0.331)와 NC 박민우(0.326) 다음이다. 그만큼 내로라하는 정교한 타격을 자랑한다. 2007년 롯데(2차 전체 29순위) 입단해 2010년 주전으로 발돋움한 뒤 3할 타율을 놓친 시즌은 2019년이 유일하다. 당시에도 타율 0.295로, 아쉽게 10년 연속 3할 달성에 실패했다. 팬들 사이에서 "손아섭 부진을 걱정하는 건 쓸데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이유다.
올 시즌 부진은 심각했고, 오래 진행됐다. 개막 후 두 달이 훌쩍 지나도록 손아섭은 3할 타율을 한 번도 밟지 못했다. 개막 후 4월까지 타율 0.272를 기록했다. 5월 타율은 0.259로 더 낮아졌다. 그의 표정은 늘 어두웠다. 그를 향한 따가운 시선이 생겼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일들의 연속이었다.
손아섭은 이달 안타 행진을 시작했다. 지난 20일 사직 삼성전에서 5타수 3안타를 기록, 시즌 처음으로 3할 타율 고지를 점령했다. 개막 후 이렇게 오랫동안 3할 타율 터치가 늦었던 건 올해가 처음이다.
손아섭은 22일 NC전 2타수 무안타에 그쳐 타율이 0.298로 떨어졌다. 그러나 23일에는 5타수 3안타를 때려내며 타율 0.304를 기록했다. 24일 역시 5타수 3안타를 쳐 어느덧 0.309까지 올랐다. 지난 1일부터 24일까지 손아섭의 타율은 0.410다. 6월 타율은 팀 동료 정훈(0.416)에 이어 KBO리그에서 두 번째로 높다.
손아섭이 살아나니 롯데도 반등하고 있다. 5월까지 승률 0.341로 꼴찌로 처졌던 롯데는 이달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 KIA를 끌어내리며 탈꼴찌에 성공했다.
손아섭이 그 선봉장에 있다. 롯데는 지난 10일 두산전에서 4-1로 앞서다 9회 초 4-4 동점을 허용했다. 분위기가 처진 순간, 손아섭은 9회 말 2사 3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쳤다. 지난 18일 삼성전에선 2-0으로 앞선 5회 삼성 선발 원태인으로부터 3점포를 터뜨렸다. 올 시즌 출장한 59번째 경기 만에 기록한 마수걸이 홈런이었다. 23일 NC전에서는 2-2로 맞선 5회 1사 2루에서 결승타를 기록했다.
손아섭은 올 시즌 부진은 몇 가지로 이유로 풀이된다. 올 시즌 종료 후 개인 두 번째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의욕과 부담이 동시에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장타 생산에 욕심을 내고 타격 자사에 변화를 준 것이 악영향을 끼쳤다. 그가 타율 2할 중반을 오르락내리락했을 때, 가장 심각한 건 장타력 감소였다. 5월까지 장타율은 0.293으로 규정 타석을 채운 56명 중 55위였다. 홈런도 없었지만, 2루타가 크게 줄었다.
손아섭은 "선수라면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 않나. 지난해 부족했던 홈런(11개)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홈런을) 늘리고 싶었다. 그래서 변화를 준 것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며 "시작이 꼬이면서 악순환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손아섭은 2017년 20홈런, 2018년 26홈런을 기록한 바 있다. 그리고 2019년 홈런타자로 변신을 꾀하다가 생애 처음으로 2할 타율 부진을 경험했다. 그 실패를 올해도 반복한 것이다.
하지만 손아섭은 반등에 성공했다. 악바리 정신 덕분이었다. 그는 슬럼프가 시작되자 어김없이 '나 홀로 훈련'을 했다. 손아섭은 "거의 두 달 정도 실내야구장을 빌리다시피 했다"라고 말했다. 또 사령탑이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위해 휴식을 줄 때, 손아섭은 계속 출전 의지를 보였다. 경기를 뛰면서 슬럼프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였다.
손아섭은 "그동안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해서 스트레스가 많았다"며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루틴을 신경 쓴 덕분에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아직도 야구를 배우는 중이다. 은퇴할 때까지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