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정훈(34·사진)은 몇 번이나 좌절했다. 프로 데뷔 후 1년 만에 방출되는가 하면, 3할 타자에서 한순간에 백업 내야수로 밀려났다. 일정한 포지션이 없어 가방에 글러브를 3개씩 넣고 다녔다. 그렇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그는 “절박하다”고 말했다.
정훈은 올 시즌 롯데의 최고 타자다. 7일까지 타율(0.337), 홈런(9개), 타점(48개), 장타율(0.495) 등에서 팀 내 1위에 올라있다. 최근 4번 타자로 자주 나서자 동료들은 “라인업이 잘못된 거 아니냐”, “기념으로 전광판 사진 찍어놓으라”고 놀리기도 한다. 국가대표 4번 타자 출신 이대호(39)가 오랫동안 차지한 자리에 그의 이름이 어느덧 어울린다. 정훈이 4번 타자로 나섰을 때 타율은 0.400(타점 23개)에 이른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험난했다. 2006년 육성 선수(연습생)로 현대에 입단한 정훈은 이듬해 방출됐다. 고향(마산)에 머물다가 “군대나 다녀오라”는 친구의 말에 입대를 신청했다. 육군 9사단에서 박격포병으로 복무했다.
전역 후엔 다른 직업을 알아보다 고교 시절 은사의 권유로 창원 양덕초등학교에서 야구 코치를 맡았다. 그러다가 롯데의 육성 선수 테스트를 통과했다. 정훈은 “미친 듯이 야구를 했다”고 회상했다.
2010년 프로 데뷔한 그는 2013년 주전으로 도약했다. 2014년 타율 0.294, 2015년에는 0.300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6년 그의 타율은 0.262로 떨어졌다.
그러자 롯데는 정훈의 수비가 약하다는 점을 고려해 외국인 2루수(앤디 번즈)를 영입했다. 백업 선수로 밀려난 그는 “젊은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경기를 뛰었다. 하지만 휴식이나 경기 준비 등에 대해 너무 소홀했다.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고 여겼다”고 돌아봤다.
정훈은 이때부터 2루수뿐만 아니라 1루수·외야수 수비를 준비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팀이 내게 원하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다. 여러 포지션을 돌아다니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정훈은 올 시즌 1루수로 374과 3분의 2이닝, 외야수로 123과 3분의 1이닝을 수비했다. 한때 3개 포지션의 글러브를 갖고 다녔으나 요즘은 2루수를 볼 가능성이 작아서 1루수와 외야수 글러브만 챙긴다고 한다.
백업으로 밀려났을 때 정훈은 레그킥(다리를 높이 들었다가 내디디며 체중을 이동하는 타법) 자세를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가끔 몸의 중심을 잃어 넘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온 힘을 싣는 그만의 폼이 완성됐다. 정훈은 “타석에 설 기회가 적었을 때 (코치진에) 임팩트를 주려면 장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온몸을 쓰는 정훈은 2021년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그는 “처음 주전으로 뛰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절박하다. 세 살 아들이 아빠가 야구 선수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될 때까지 뛰는 게 작은 꿈”이라고 했다.
정훈의 가장 큰 목표는 가을 야구다. 그는 “팀이 오랫 동안 플레이오프(PO)에 진출하지 못 했다. 내가 (주전으로) 경기에 나갈 수 있을 때 다시 한번 PO에 올라가고 싶다”라고 했다. 그는 개인 통산 포스트시즌 8경기(8타석 6타수 무안타)에 나섰지만, 모두 교체 출장이었다. 정훈은 “가을 잔치를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