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찬이 EPL 데뷔전에서 골을 터트린 뒤 환호하는 모습. 그는 EPL 홈페이지 팬 투표에서 62.2%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킹 오브 더 매치’로 뽑혔다. [로이터=연합뉴스]
“늑대들을 일으켜 세워 다시 달리게 했다.”
영국 가디언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데뷔전에서 골을 터뜨린 황희찬(25·울버햄튼)의 활약을 이렇게 표현했다. 울버햄튼 팀의 별명이 바로 ‘늑대들’이다.
황희찬은 12일(한국시간) 영국 왓포드의 비커리지로드에서 끝난 2021~22시즌 리그 4라운드 왓포드 원정경기에서 팀이 1-0으로 앞선 후반 38분 쐐기 골을 터뜨렸다. 울버햄튼 유니폼을 입고 나선 첫 경기에서 기록한 첫 골이자, 팀의 시즌 첫 필드골이었다.
울버햄튼은 앞서 치른 올 시즌 리그 3경기에서 무득점(3실점)에 그쳤다. 이날 첫 골도 상대 자책골(후반 29분)이었다. 왓포드를 2-0으로 이긴 울버햄튼은 개막 3연패 끝에 첫 승리를 거뒀다.
황희찬은 EPL 홈페이지에서 팬 투표로 선정하는 ‘킹 오브 더 매치(MVP)’로 뽑혔다. 62.2%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이날 골로 황희찬은 1년 3개월간 이어진 유럽 정규리그 무득점 부진도 털어냈다. 울버햄튼 구단 홈페이지는 “승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황희찬의 활약”이라고 칭찬했다.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한 황희찬은 후반 18분 프란시스코 트린캉(22)과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다. 울버햄튼 팬의 힘찬 박수를 받은 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다. 부지런히 상대 진영을 누비던 황희찬은 20분 만에 골로 응원에 보답했다. 페르난도 마르사우(32)가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시도한 논스톱 슈팅이 상대 수비수를 맞고 흘러나오자, 골문으로 돌진하던 황희찬이 공을 왼 무릎으로 한 번, 왼발로 연달아 두 번 슈팅해 기어코 골문에 밀어 넣었다. 사냥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제압하는 늑대를 연상케 했다.
그는 여유 있게 두 팔을 벌리고 달리는 골 세리머니로 홈 관중 호응을 유도했다. 울버햄튼 트위터는 “황희찬이 완벽한 타이밍에 정확한 장소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그의 별명은 ‘황소’였는데, 이젠 ‘늑대’로 불리기에 손색없다”고 했다.
첫 경기부터 자신의 강점인 침투와 골 결정력을 뽐낸 황희찬은 브루노 라즈(45) 울버햄튼 감독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받았다. 그의 꿈인 빅리그 주전 공격수로 올라설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달 30일 황희찬은 라이프치히(독일)에서 울버햄튼으로 임대 이적했다.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 앞서 그는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에서 뛰다 지난해 7월 라이프치히로 이적했다.
유럽 4대 빅리그인 분데스리가에 입성했다는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팀 내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2020~21시즌 백업 선수로 활약하며 1도움(18경기)에 머물렀다. 주로 후보 선수들이 나서는 독일축구협회(DFB) 포칼에선 5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했다. 올 시즌에도 팀 내 입지가 변하지 않자, 그는 울버햄튼 이적을 결심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황희찬의 출전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기 후 라즈 감독은 “올 시즌 준비가 부족했다. 프리시즌을 1~2주밖에 치르지 못하고 정규리그를 시작했다. (개막 후) 입단한 황희찬은 훈련은커녕 우리 팀 비디오를 보고 우리 팀 공격과 수비 방식을 익혔다. 그런데도 전력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황희찬의 출발이 좋다. 우리 팀에서 멋진 미래가 펼쳐지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황희찬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울버햄튼의 위대한 승리(What a great victory of the team). 꿈꾸던 무대에서 골.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축구대표팀 동료이자, 같은 리그에서 뛰는 손흥민(29·토트넘)은 황희찬의 인스타그램 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데뷔골을 축하했다.
한편 손흥민은 대표팀에서 생긴 종아리 부상 여파로 11일 크리스탈 팰리스전에 결장했다. 토트넘은 오는 23일 카라바오컵(리그컵) 3라운드에서 울버햄튼과 맞붙는다. 손흥민이 빠르게 회복한다면 황희찬과 맞대결할 수 있다.